세도나는 오늘날 백인의 땅이지만,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인디언의 축복받은 땅이자 그네들이 최후를 마감한 땅이었다.

아메리카인디언의 역사는 알려진 것보다는 가려진 것이 훨씬 더 많다. 흔히 인디언이라고 칭하지만 정작 아메리카에 인디언은 없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있을 뿐이고, 아파치족·나바호족·과기틀족 등등 각각의 종족 이름이 있을 뿐이다. 인디언은 인도에만 있기 때문이다. 대개 인디언이라고 부르고 이글에서도 같은 용어를 쓰고 있지만 적어도 이러한 점만큼은 사전에 재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역사란 어느 입장에서 보는가에 따라 다르다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발견’을 역으로 생각한다면, 원주민 입장에서는 ‘발견’당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살아온 터전에 그 누군가 약탈을 위해 쳐들어온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발견’이란 말도, 또한 흔히 쓰는 ‘개척’이라는 말도 함부로 쓸 일이 아니다. 이러한 진의를 되새기면서 서부개척 시대란 말을 써야 할 것이다. 백인들에게는 개척 시대였지만 원주민들에게는 대량학살 시대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백인들이 베풀었던 엉터리 약속, 전쟁과 대학살이 난무하는 가운데 백인 목장주·광산주·군인들이 원주민의 땅과 유산, 그리고 마침내 최소한의 살아갈 자유마저 짓밟았다. 유명한 전사들과 추장들의 기가 막힌 이야기 속에는 잔혹과 배신, 폭력으로 얼룩진 아메리카대륙의 가려진 진짜 역사가 숨어 있다.


세도나, 가려진 역사 / 숨겨진 인디언의 역사


미국이나 멕시코는 어느 지역에나 원주민의 역사가 숨어 있듯이 거칠고 메마른 애리조나 주도 예외가 아니다. 애리조나는 기본적으로 사막 지대이다. 애리조나에 주둔하면서 아파치족을 쫓던 한 백인 장교는 이런 기록을 남겼다. ‘비가 하도 오지 않아서 비가 조금이라도 올 때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메마르고 뜨거운 바람이 먼지와 모래를 몰아와서 들판에는 아무것도 심을 수가 없다. 여름이면 찌는 듯한 그늘에서도 화씨 110도(섭씨 43도)가 넘는다. 그 정도 기온만 되어도 아주 서늘한 축에 끼는 편이다. 1년 내내 파리와 각다귀, 그 밖에 이름 모를 해충들이 떼지어 몰려든다.’
(어느 백인 장교의 글‘나를 운디드니에 남겨주오’ 중에서)

원주민들은 이민자들과 오랫동안 싸워나갔다. 그러나 수적으로나 무기로나 대적이 되지 않았다. 원주민들은 대개 멸종당하고 일부가 살아남아 보호구역에 갇혔다. 백인들은 척박한 골짜기나 황량한 산악지대 등에 원주민들을 집단 수용하였다. 그들은 기근과 질병, 끝없는 이주, 게다가 정책적으로 보급되는 알코올에 의하여 술주정뱅이로 전락해 갔다. 한때 그네들이 성스러운 땅으로 여기던 애리조나의 세도나도 그렇게 인적이 끊긴 곳으로 변해갔다.

그렇다면 왜 그 황량하던 세도나가 인디언의 성지로서, 그리고 오늘날에는 수많은 백인들이 찾아드는 또 다른 성지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을까. 단순하게 ‘인디언 성지’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연유를 밝히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왜냐하면 세도나는 오늘날 백인의 땅이지만,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인디언의 축복받은 땅이자 그네들이 최후를 마감한 땅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