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아까워! 내 알바비(아르바이트비) 시급이 5,000원인데 어떻게 나가서 그 비싼 밥을 사 먹어. 그냥 집에서 맛있게 밥해 먹자 우리. 응?”

 딸이 열심히 하는 것이 기특해서 엄마가 외식하자고 했다. 그랬더니 열여덟 딸이 이렇게 말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성규빈 양이다. 올해로 열여덟 살, 학교에 다녔다면 고등학교 2학년일 규빈 양은 온종일 땡볕에서 벽화작업을 하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저녁마다 5시간씩 갈비집 알바를 한다. 매일은 아니지만 거의 아침 7시에 집을 나서서 밤 11시가 다 되어야 들어오는 스케쥴이다. 집에 들어왔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아무리 늦어도 빠짐없이 그날 하루를 정리하는 일지를 작성해야 한다. 때때로 부모님 발을 힐링(Healing)하는 과제도 해야 한다.

▲ 딸 성규빈 양(좌)과 엄마 최순남 씨.

 규빈 양이 교실이 아닌 벽화 작업장, 갈비집 홀에 서게 된 것은 특별한 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이다. 바로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이하 벤자민학교)’이다. 벤자민학교는 지난 3월 4일 설립식 및 첫 입학식을 열고 27명의 학생을 받았다. 온 세상을 교실로 삼는 벤자민학교는 1년 동안 학교 밖에서 생활하며 학생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꾸려 나간다. 수학영재도 과학영재도 아닌, 인성이 바른 사람, 인성영재를 목표로 한다.

▲ 성규빈 양의 엄마 최순남 씨

 전교 3등으로 고등학교를 입학한 규빈 양이었다. 이렇게 좋은 성적으로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벤자민학교에 입학시킨다는 것이 부모 입장에서는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하지만 규빈 양의 엄마, 최순남 씨(안동 용상초 교사, 안동국학원장)는 15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벤자민인성영재학교를 아이가 얼마나 귀하게 선택했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걱정은 없어요. 규빈이가 정말 치열하게 고민하고 선택한 학교거든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내신을 잘 받기 위해 선택한 그런 학교가 아니라, 규빈이 꿈처럼, ‘모두에게 이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선택했으니 잘 되리라 믿습니다.”

 걱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벤자민학교가 인성영재를 양성하는 좋은 목적과 프로그램을 가진 학교라는 것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확신이 있었다. 다만, 학교나 기숙사처럼 주어진 환경이 없이, 하나부터 열까지 오롯이 학생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가야 하는데, 딸이 그렇게 해낼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엄마의 지나친 노파심이었고 기우(杞憂)였다. 아이는 놀랍도록 주도적으로 상황을 주도해나갔다. 그 첫 관문은 아르바이트였다.

 "벤자민학교에서는 크게 봐서 세 가지를 해야 해요. 1년 동안 진행할 개인 프로젝트, 운동, 그리고 알바죠. 알바를 구해야 하는 미션이 아이들에게 주어졌는데, 쉽게 구하질 못했어요. 처음 시작한 경양식 집에서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일주일도 못 가서 잘렸대요. 학교를 휴학한 열여덟 살에게 세상은 녹록지 않더군요. 다짜고짜 책임감 없이 학교도 안 가는데 일을 어떻게 잘하겠느냐며 안 받아주는 곳이 많았다고 해요.
 결국 찾아간 곳은 동네에서 제일 큰 갈비집이었어요. 1년 내내 알바생을 구할 만큼 장사가 잘 되는 곳이자, 알바생들에게는 ‘빡세다(일이 힘들다)’고 소문난 곳이었어요. 엄청 힘들 텐데도 정말 기뻐하면서 아르바이트하고 있어요. (웃음)”

 규빈 양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5시부터 마감까지 5시간을 일한다. 뜨거운 숯불에 무거운 불판까지 고되기로 소문난 알바지만, 규빈 양은 정말 즐겁게 지내고 있다. 베트남에서 시집온 언니, 인근 대학교로 유학 온 중국인 유학생 언니 오빠들, 주방 이모들까지 다들 규빈 양을 챙겨준다. 며칠 전에는 중국인 유학생 언니 오빠들 한국어를 가르쳐줬다면서 자기도 중국어를 배우겠다고 중국어 교재를 사왔다고 한다.

 “어렵게 구한 알바였지만, 처음에는 막상 갈비집에서 알바를 한다고 해서 '이 귀한 시간에 허리가 휘어지도록 일해서 시급 5,000원짜리 알바를 하는 게 맞나’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림을 좋아하니까 미술학원에서 보조를 하는 편이 더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더 잘 되었다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돈 이야기만 나와도 얼마나 알뜰살뜰하다고요. 외식하자는 말에 아까우니 집에서 더 맛있게 먹자고 말할 정도니까요. (웃음)”

 지난 겨울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캐몽’이다. 고가의 수입 패딩점퍼 ‘캐나다 구스’와 ‘몽클레어’의 이름을 합친 것이다. 100만 원을 훌쩍 넘어 수 백만 원을 호가하는 패딩점퍼인데, 이 옷이 10대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면서 일명 ‘등골브레이커(부모의 등골을 휘게 할 만큼 비싼 것)’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부모에게 ‘캐몽’을 사주지 않으면 '집을 나가겠다’ ‘공부를 안 하겠다’며 협박하는 10대 이야기가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다. 규빈 양 이야기를 듣는다면 너도나도 벤자민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지 않으려나.
 

▲ (사진 좌) 벽화를 그리러 의성으로 가는 규빈 양. 햇볕을 가리기 위해 챙이 큰 밀짚모자는 필수품이다. (사진 우) 4월 13일 규빈 양의 생일을 맞아 규빈 양의 멘토인 권택환 대구교대 교수와 함께 생일 케잌의 초를 끄고 있다. 벤자민인성영재학교는 다양한 직업군의 멘토단이 마련되어 있다. 학생들은 스스로 자신의 멘토를 선택하고 다양한 가르침을 받게 된다.


 벤자민학교 학생으로서 꼭 해야 하는 것은 또 있다. 바로 1년 동안 진행할 개인 프로젝트다. 주제는 무엇이든 좋다. 단, 1년 안에 프로젝트를 완료해야 한다. 규빈 양이 선택한 1년 프로젝트는 바로 ‘길거리 그림 전시회’였다.

 “처음에는 학원을 보내려다가 공장에서 찍어내듯 입시미술만 하게 될 것 같아 고심하던 차에 이희복 경북도예협회장님을 우연한 기회에 소개받게 되었어요. 도예 분야의 장인(匠人)으로 손꼽히는 분이신데 미대 교수를 하셨던 터라 기본적으로 규빈이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어주고 계세요. 규빈이 말로는 ‘세상이 정말 온 힘으로 나를 도와주고 있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정말이에요. 감사한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답니다.”

 규빈 양은 '돈을 안 받는 대신 시간 날 때마다 가르쳐주겠다’던 이희복 협회장과 함께 요즘 매일같이 경북 의성 안계면으로 출퇴근한다. 안계면에서 안동국학원 측에 민족정신이 깃든 벽화 작업을 의뢰했고 이 협회장이 이번 작업을 도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규빈 양은 덕분에 물 만난 고기가 됐다. 아침 7시 집에서 출발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종일 벽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규빈이가 벽화 작업 때문에 주중에 더러 알바를 제때 못 가곤 하는데, 그걸 채우기 위해서 주말에도 알바를 나가기 시작했어요. 주말에는 손님이 훨씬 많고 북적여서 알바가 더 힘들 텐데도 ‘내가 그림을 더 잘 그리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해야 한다. 사장님과 한 약속인데 책임감 있게 일해야 한다’며 일하러 나가요. 며칠 전에는 불판에 데여서 팔에 화상을 입어왔더라고요. 마음이 아주 아팠지만, 더 응원해줬어요. 학교만 다녔다면 몰랐을 사람과의 관계, 돈의 소중함, 책임감을 규빈이는 배우고 있어요. 그것만으로도 참 귀한 시간이죠."

▲ 규빈 양이 작업하고 있는 벽화. 규빈 양은 경북 의성 안계면에서 우리 민족정기를 담은 벽화 그리기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좌) '신시개천도' 앞에 선 규빈 양 (사진 우측 상단) 삼족오를 그리는 규빈 양 (사진 우측 하단) 완성된 '신시개천도'


 벤자민학교가 규빈이에게 가져다준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온몸에 땀이 많이 나는 다한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게다가 매일 아침 늦잠으로 지각을 밥 먹듯이 하고 쉽게 피곤해해서 ‘저질 체력’이라 불렸던 규빈 양이 매일 안동에서 의성을 오가는 강행군에 알바까지 거뜬히 해내고 있다. 그런데도 규빈 양은 매일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하루하루가 겁날 정도로,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지 모르겠어. 세상 모든 에너지가 다 나한테 오는 것 같아. 정말 행복해.”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행복한 열여덟이 있을까. 변화는 엄마에게도 찾아왔다.

 “예전에 저는 규빈이에게 ‘너는 왜 이렇게 느리고 게으르냐’고 잔소리하기에 바빴었죠. 그런데 이젠 아니에요. 규빈이가 참 많이 행복해할 때마다 이렇게 말해줘요. '넌 정말 축복받은 아이란다’ 라고요. 정말 칭찬하게 돼요. 내 딸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귀한 존재라는 느낌. 이 아이가 더 자라서 이 세상에서 귀하게 쓰일 수 있도록 잘 키워야겠다는 다짐도 새롭게 하게 되고요.”

 전교 3등 수재였지만 규빈 양은 항상 고민이 많았다. ‘내가 뭘 해야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을 고등학교 1학년 내내 입에 달고 살았다. 그때마다 엄마인 최순남 씨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가 없다. 우리나라 입시 현실에서는 수능과 내신을 잘 받는 것 외에 별다른 길이 없지 않니. 죽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해라. 그러면 선택의 폭도 넓어질 거다”라고 했다. 그때마다 규빈 양은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왜, 무엇을 위해 내가 공부를 해야 하는지 간절함이 안 생긴다”고 말했다.

 그랬던 두 사람이 달라졌다. 규빈 양은 매일매일 간절하게 자신의 꿈을 위해 액션하고 엄마인 최순남 씨는 그런 딸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응원해주고 있다.

 최순남 씨에게 규빈 양에게 하고 싶은 한 마디를 물었다.

 “자랑스러운 내 딸 규빈. 모두에게 이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던 너의 꿈을 찾아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또 이뤄나가는 네가 자랑스럽다. 힘내자.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