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학(丹學)은 선도가 민속·무속으로 오해받던 상황 속에서도 삼성(三聖)이나 단군을 '선도 스승이자 군왕'으로 조명하였고 또 제천의례의 수련의례로서의 진면모를 회복하였다. 2000년대에는 선도의 세계화에 기반한 선도 실천운동으로서 '지구인운동과 함께 '국학운동'이 병행되고 있다."

 단학이라 하면 막연히 '기(氣) 수련'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현대 단학은 다르다. 정경희 교수(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는 지난 5일 열린 제30회 국학원 정기 학술회의에서 선도(仙道)를 바르게 세운 '단학'에 주목했다.

 <코리안스피릿>은 지난 학술회의에서 정 교수가 발표한 '현대 한국선도의 전개 양상과 단학'을 세 편에 나누어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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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韓國仙道’의 전개 양상과 ‘丹學’


1. 머리말

 ‘한국선도’는 한국사의 출발점에서 시작된 고유의 사유체계로서 수련법에 기반하고 있으며 상고 이래 줄곧 한국사상의 원류로서 기능하여 왔다. 삼국 이래 중국에서 도입된 三敎(道敎·佛敎·儒敎)의 영향력이 강화되면서 한국선도는 점차 퇴조, 불교와 습합되는 면모를 보였다. 선·불 사상을 시대이념으로 하였던 고려를 지나 조선에 이르러 선도와 극히 대척적인 유교성리학이 국가이념으로 정착되자 선도는 이단시되었고 민속·무속의 차원으로 저락되었다.

 조선말 유교성리학 이념이 時宜性을 상실하게 되자 기존에 성리학에 의해 이단으로 억압받아온 사상들이 다시 양성화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었다. 이러한 사상적 혼란기를 맞이하여 특히 한국인들에게 가장 크게 다가갔던 사상은 선도였다. 선도는 한국인들 스스로 자각하든 자각하지 못하든 의식의 심층부에 자리하고 있었고, 사상적 혼란기에는 의식의 중심자리에 있던 것이 터져나오기 마련이었다. 이즈음 선도는 東學, 正易, 甑山道, 大倧敎, 檀君敎 등 대체로 민족종교의 형태로 등장하였는데 이들 중에서도 특히 대종교 계열이 선도의 원형에 가장 충실하였다. 대종교는 한국인들에게 잠재되어 있던 선도 성향을 자극하였고, 1910․20년대 급격한 성장세를 보였는데, 특히 극성기인 1920년대에는 전국적으로 20만~30만의 대종교도를 거느릴 정도로 일대 선도의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한국 근대시기 어렵게 발아한 선도는 선도의 민족적 성향을 경계한 일제에 의해 저지된다. 일제의 선도 탄압은 대종교 박해와 같은 직접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였지만 ‘식민사관’을 통한 간접적이고 지능적인 방식으로도 이루어졌다. 식민사관의 관건인 단군 말살은 단군 인식의 기반이 되는 선도의 말살에 다름아니었다. 뿐아니라 일본을 통해 새롭게 도입된 서구사상·문화의 위상이 차츰 높아져가게 되었다. 1930·40년대 일제 식민통치의 진전은 일제를 매개로 한 서구화의 진전에 다름아니었고 이 과정에서 선도는 점차 약화되어갔다.

 1945년 광복이 되자 그간 일제의 탄압과 서구사상·문화의 우세 속에서 입지가 좁아져 있던 선도가 재기의 움직임을 보이게 되었고 한국선도는 새로운 발전의 가능성을 엿보게 되었다. 연구자는 광복 이후 선도의 변화 양상 중에서도 특히 1970년대말․1980년대초 이후의 변화에 주목해보는 입장이다. 이즈음 수많은 선도수련단체들이 등장하면서 선도수련법이 널리 보급, 선도가 대중화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2000년대 이후부터는 세계화하는 면모까지 나타났던 때문이다. 1910·20년대 한국선도가 대종교를 중심으로 일시 부흥하였다가 사그러든 이래 가장 큰 약진을 보인 시기이기도 했지만, 특히 1970년대말까지 한국선도가 민속·무속 정도로 인식되던 상황에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세계화 현상이 나타났던 시기였기에 이에 대한 연구가 요구되었고, 이에 연구자는 1970년대말․1980년대초 이후 당시 선도의 성장세를 추동했던 ‘丹學’ 계열을 중심으로 선도의 변화 양상을 고찰한 바 있다.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10여년이 지나면서 선도는 많은 변화상을 보였는데 그 중심에 ‘단학’ 계열이 자리하고 있었던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에 본고에서는 앞서의 연구에다 이후 10여년의 변화상을 추가, 1970년대말․1980년대초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선도의 전개 양상을 새롭게 분석하는 연구를 하게 되었다. 특히 이 10여년간 선도사상이나 선도사 등 한국선도 방면에서 이루어진 연구 성과를 대폭 수용함으로써 이시기 선도의 전개상을 보다 깊이있게 천착하고자 하였다.

 먼저 제2장에서는 이시기 선도수련법이 대중화하는 양상을 살펴보려 한다. 또한 선도수련법이 대중화할 수 있었던 가장 본질적인 요인으로 한국선도의 현대화라는 요인을 제시하였다. 제3장에서 그 현대화 양상의 첫 번째 요소로 선도 기학이 현대화한 면모를 살펴볼 것이며 제4장에서는 그 두 번째 요소로 선도 수련법이 현대화한 면모를 살펴볼 것이다. 제5장에서는 선도의 현대화가 가능하였기에 더 나아가 세계화에도 성공할 수 있었다고 보고 세계화의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6장에서는 선도가 현대화하며 또 세계화하는 추세 속에서도 한국선도의 원형이 지켜갔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2. 한국선도 수련의 대중화

 일제시기 선도의 중심이 대종교였듯이 광복 이후 선도도 대종교 계열 인사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상해임정에서 대종교계 인사들의 활약이 컸기에 광복후 새로 수립된 정부내에서도 대종교 계통 인사들의 비중이 적지 않았는데, 民政長官 安在鴻, 대한민국정부 초대부통령 李始榮, 국무경리 李範奭, 문교부장관 安浩相, 감찰위원장 鄭寅普, 審計院長 明濟世, 국방부장관 申性模 등을 위시하여 다수의 국회의원, 국무위원이 배출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속에서 선도가 국가적 차원에서 공인되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있었다. 1948년 9월 檀紀 사용이 결정되었으며 1949년에는 양력 10월 3일이 ‘開天節’로서 국경일화하였으며, 대한민국 교육이념으로 선도의 ‘홍익인간’ 이념이 채택되었다. 또한 대종교는 종단 제1호로 등록되었으며, 선도이념에 입각한 학원 설립의 노력으로 弘益大學, 國學大學, 檀國大學 등 다수의 학원이 설립되었다. 대종교 계통 정치가들에 의해 선도이념은 정치이념화하기도 하였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조소앙의 三均主義, 안재홍의 新民族主義, 안호상의 一民主義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가는 계속 이어지지 못하였다. 해방 이전부터라도 일제를 매개로 한 한국사회의 서구화 방향은 이미 정해진 것이었지만 해방 후에는 더욱 가속도가 붙게 되었다. 한국은 서구의 양대 사조인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이념이 집중적으로 적용되면서,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도 양자의 대립점이 첨예하게 드러나는 곳이 되었고 결국 6·25를 계기로 남북이 분단되었다.

 남북 분단 이후 한국사회에 적용된 냉전 체제 하에서 남·북한 할 것 없이 모두 선도의 민족주의 노선을 거부하였고 선도는 크게 쇠락하였다. 남한의 경우 정인보, 조소앙, 조완구, 안재홍, 명재세와 같은 대종교계 인사 및 신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의 납북이 선도 약화의 일차적인 원인이 되었다. 이외에도 냉전체제 하에서 민족주의적 정서가 금기시되었던 점도 선도 발전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또한 남한에서 새롭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미국을 통하여 서양사상이나 종교(기독교)의 영향력이 더욱 강화되어갔던 이유도 컸다.

 서구 근대의 합리주의적 학문방법론에 의거할 때 한국선도는 원시신앙에 불과해진다. 동양사상들 중에서 불교나 유교 등 후대에 전통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사상들은 그나마 동양사상 전통의 하나로 학문적으로 인정되며 때로는 서양사상에 대한 대안으로 주목되기까지 하였던 반면 한국선도는 ‘원시 샤머니즘(巫敎, 무속)’, ‘민간신앙’, ‘민족종교’ 등의 애매한 이름으로 격하되었다. 더우기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선도는 단군이라는 우상 숭배의 전통하에서 나온 ‘이단종교’에 불과해진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한국선도는 상고 이래 한국사의 근간이자 한국적 정체성의 뿌리로서의 위상, 가깝게는 근대 항일독립운동의 주축으로서의 위상마저 심각하게 손상을 입을 정도가 되었다. 광복 직후에 나타난 선도 부활의 가능성들도 다시 사라져, 1962년 단기연호 대신 서기연호가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개천절도 형식적 국경일로 외면되어갔다.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으로 표방된 ‘홍익인간’의 이념 또한 형식적 구호로 전락되어갔다.

 학문적으로도 신민족주의사학자들이 납북되면서 사학계내에서 실증사학이 우세해지고 식민사학에 대한 극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민족주의사학의 선도 연구가 제대로 계승되지 못하였다. 물론 사학계에서와 달리 철학, 국문학, 종교학, 민속학 계열 등에서는 민족주의사학자들의 선도 연구를 계승, 발전시켜갔고 그 결과 선도사상이 새롭게 ‘한사상’으로 정립되는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선도 연구가 사학계로 수렴되지는 못하였기에 국민들의 역사인식 속에서 선도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지 못하였던 점은 선도 약화의 가장 결정적인 원인으로 분석된다.

 남북분단 이후 약화 일로에 있던 선도는 1970년대말·80년대초 무렵이 되면서 새로운 변화의 계기가 주어지게 되었다. 곧 이즈음 그간 침체 일변도에 놓여 있던 선도가 선도수련법을 중심으로 대중적으로 널리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경제성장이라는 절박한 생존의 문제를 해결한 한국인들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찾게 되었고 이러한 선상에서 동양사상이나 동양 명상법 등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서구화된 동양사상 및 명상법인 TM(초월 명상), 마인드콘트롤, 아바타, 각종 요가나 중국계 기공 등에 관심이 높았으며 선도에 대한 관심은 미미하였다. 1970년대 선도수련단체로는 正覺道(1970년대 중반 國仙道로 개칭)가 유일하였다. 정각도는 1967년 靑山 고경민 仙士에서 비롯되었는데 1970년대말에 이르기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다.

 고유의 선도에 대한 관심은 1970년대말· 1980년대초 무렵부터 본격화되었다. 이즈음 ‘丹田呼吸’이나 ‘氣’를 표방한 많은 선도수련단체가 등장하게 되는데 우선 1970년대까지 저조하던 國仙道가 선도사상과 수련법 체계를 정비하면서 크게 성장하였다. 1985년에는 一指 李承憲(1950~현재) 仙士가 ‘단학’을 주창, 丹學仙院(2002년 단월드로 개칭)을 설립, 국선도와 함께 선도의 대표적인 양대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이외에도 1986년 韓國丹學會 硏精院, 1991년 道華齋 石門呼吸, 1998년 樹仙齋를 위시하여 크고 작은 수많은 선도수련단체들이 등장하였다.

 이처럼 1970년대말․1980년대초 우후죽순격으로 등장한 선도수련단체들의 성장세는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급속하게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기왕에 등장한 많은 선도수련단체들이 약세를 면치못하거나 경영난속에서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단학’ 계열만이 지속적인 성장세를 유지하는 이채로운 면모를 보였다. 단학은 국내외에서의 활발한 활동을 통해 가장 성공적으로 세를 확장하여 선도수련단체의 대표격으로서 위상을 부여받게 되었다. 현재 국내 300여개 외에 일본,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네덜란드, 러시아, 중국 등 해외 여러나라에서 단센타를 운영하는 국·내외 최대 규모의 선도수련단체로서 선도의 대중화를 주도해오고 있다.

 이처럼 1970년대말․1980년대초 이후 한국사회에 선도수련단체들이 집중적으로 등장, 선도수련법이 대중화하였음을 살펴 보았다. 이러하다면 근대 이래 등장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한국선도의 주축이 되고 있는 민족종교들은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가? 민족종교의 경우 단순히 종교적인 신앙 차원에 머문 경우라면 민족종교로 범주화해야겠지만 종교적 신앙 차원에 머물지 않고 선도수련(지감․조식․금촉수련)에 기반하여 ‘신인합일’, 또는 ‘천인합일’이라는 한국선도의 본령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는 경우는 비록 민족종교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선도수련단체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제시기 대종교 등에 이어 광복 이후에도 正一敎(1965년, ‘한얼교’로 개칭) 이하 많은 민족종교들이 등장하였는데, 이들 중에서도 특히 1980년대 이후 한국선도의 변화된 흐름을 타고 선도수련법에 기반, 선도수련단체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지는 경우로 仙佛敎(2000년)가 주목된다. 선불교는 1980년대 이후의 대표적인 선도수련단체인 ‘단학’ 계열에서 갈라져 나와 민족종교로 정립된 경우이기에 민족종교 중에서도 선도수련단체의 면모가 가장 강한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남북분단 이후 약화 일로에 있던 선도는 1970년대말·1980년대초에 이르러 다시 한번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이즈음 먼저 서구화된 동양명상법이 소개되었고 같은 맥락에서 한국선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수많은 선도수련단체가 등장하였고 선도수련법의 보급을 통해 선도가 크게 대중화되었는데, 이러한 흐름을 주도한 계열로 ‘단학’이 있다. 한국 근대의 선도가 대종교를 중심으로 민족종교의 형태를 취하였던 것과 달리 1970년대말·1980년대초 이후의 현대 선도는 선도수련법의 보급이라는 방식을 통해 부흥한 특징이 있다. 근대 이후 선도가 민족종교의 방식으로 부활한 이래 선도는 민족정신, 또는 민족종교의 차원으로 이해되었을 뿐, 실상 선도의 본류라 할 수련법의 측면은 제대로 조명되지 못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비로소 수련법을 중심으로 하게 되었으니, 한국선도의 본령이 제대로 발현되기 시작한 것으로 이해해 보게 된다.

 

3. 한국선도 氣學의 현대화

 앞서 1970년대말․1980년대초에 등장한 수많은 선도수련단체들 중에서도 ‘단학’ 계열이 선도수련의 대중화를 주도하였음을 살펴 보았다. 단학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선도수련을 대중화할 수 있었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의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연구자의 경우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로 한국선도 전통을 현대화하였던 점을 들고자 한다. 한국선도 전통에서 바라볼 때 단학이 주목되는 이유는 물론 현대에 등장한 수많은 선도수련단체들 중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세를 확장하여 한국선도를 대표하는 세력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선도전통의 현대화에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단학이 선도전통을 현대화한 면모는 여러 측면에서 이야기될 수 있지만 가장 우선적으로 지적되어야 할 점으로 한국선도의 요체인 ‘仙道 氣學’을 현대화한 측면을 들 수 있다. 한국선도를 대표하는 핵심 경전인『천부경』·『삼일신고』를 위시하여 민간의 오랜 선도전통에서는 모든 존재의 본질로서 ‘一(한, 하느님)’을 제시하고 이를 이루고 있는 세 차원(三元)으로 ‘天·地·人 三(삼신三)’을 제시한다. 이는 ‘一·三, 삼신하느님’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종래 다양한 해석법이 있어왔는데, 단학에서는 이를 氣學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차이를 보였다. 곧 천‧지‧인 삼원을 기에너지의 3대 요소로서 설명하였는데 ‘天氣=정보ž의식(정보·의식의 속성은 無·空이기 때문에 無·空으로 표현되기도 함), 地氣=질료·물질, 人氣=氣에너지’라는 해석이나 ‘天氣=빛光, 地氣=파동波, 人氣=소리音’로 설명하였다. 곧 ‘천기=정보ž의식=빛光, 지기=질료=파동波, 인기=氣에너지=소리音’으로 바라본 것으로 이는 기존의 해석법과 차별화되는 대단히 새로운 해석법이자 특히 선도 기학과 양자역학 등 물리학을 연동시키는 고리를 만든 이론으로 크게 주목된다.

 흔히 기라고 하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지는 에너지’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정보·의식’이나 ‘질료·물질’까지도 포함, 존재하는 모든 것을 기로 바라본 것이니, 천·지·인 삼원은 모두 氣이며 단지 기의 형태만 다른 것으로 인식되었다. 곧 기는 ‘천기(정보ž의식, 빛光) ↔ 인기(氣에너지, 소리音) ↔ 지기(물질, 파동波)’의 순으로 밝고 가벼운 차원과 어둡고 무거운 차원 사이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처럼 단학에서는 ‘一·三, 삼신하느님’의 실체를 기, 곧 ‘일기·삼기’로 바라보았는데, 그 효과적 의미 전달을 위해서는 주로 ‘홀로 스스로 존재하는 영원한 생명’, ‘천지기운’, ‘생명전자’ 등으로 표현하였다.

 단학에서는 ‘일기·삼기’의 속성에 대해서도 주목할 만한 해석을 하였다. 종래 일기·삼기의 속성에 대해서는『삼일신고』의 ‘無善惡(·無淸濁·無厚薄)’이라는 고전적인 해석이 있어왔다. 단학에서는 ‘일기·삼기’가 무심한 기에너지일 뿐으로 치우침이 없다는 의미에서 이를 ‘無我, 無, 空, 0점’ 등으로도 해석하며 더 나아가서는 이것이 어떠한 私적인 치우침도 없는 ‘公(全體)’의 속성을 지닌다는 의미에서 ‘공전을 우선한 자전, 공평을 우선한 평등, 구심력을 우선한 원심력’으로도 해석, 선도 기학의 심오한 깊이를 드러내었다.

 한국선도에 대한 단학의 기학적 접근법은 한국사 연구에도 큰 기폭제가 되었다. 먼저 ‘일기·삼기’적 인식은 한국 상고·고대사에서 널리 등장하는 ‘하늘(천)=밝음(빛)’ 신앙에 대한 획기적인 시각의 전환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곧 단학의 해석법에 의하면 ‘일·삼, 일기·삼기, 삼신하느님’은 형태상 ‘미세한 소리音와 파동波을 지닌 빛光’이니 이것이 한국 상고·고대사에 널리 등장하는 ‘하늘(천)=밝음(빛)’의 실체임을 밝힐 수 있었다.

 다음 한국의 구비설화나 민간전승, 또 선도서 등에 널리 등장하는 ‘마고(마고할미, 삼신할미, 마고여신)’도 선도 기학의 관점으로 바라볼 때 우주의 근원적 생명력이자 법칙인 ‘일기·삼기’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종래 한국사속의 마고 전승들은 ‘하늘(천)=밝음(빛)’ 사상과 분리된 채 별개의 地母神(大母神) 신앙 정도로 인식되어왔는데 선도 기학의 관점을 통해 마고사상은 ‘하늘(천)=밝음(빛)’ 사상의 일종으로 수렴될 수 있었다. 또한 단학에서는 우주의 근원적 생명력인 ‘일기·삼기’가 北斗七星 근방에서 시작된다고 봄으로써 한국 상고 이래의 오랜 북두칠성(칠성) 신앙 역시 선도 기학의 일종으로 조명하였다.

 이상에서 단학이 한국선도의 요체인 ‘일·삼, 삼신하느님’을 ‘일기·삼기’로 바라봄으로써 한국 상고·고대사나 민속·무속 등에 널리 등장하는 ‘하늘(天)=밝음(빛)’ 사상, 북두칠성사상, 마고사상 등 다기한 계통의 선도 전통을 하나로 종합할 수 있었음을 살펴 보았다. 단학의 ‘일기·삼기’의 관점은 한국 상고․고대사, 특히 사상·종교사 방면의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학에서는 ‘일기·삼기’를 대체로 아래와 같은 형태의 기표상으로 도상화하여 사용해오고 있다. 먼저 1기는 대체로 동심원(소용돌이)형 또는 약동하는 원형으로 표현되었다.(<자료1-1>) 다음 3기는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문양인 삼태극형 또는 삼족오형을 그대로 가져와서 사용하거나(<자료1-2-左·中>) 아니면 대종교의 천·지·인 표상인 원·방·각형을 가져와 약간의 변형을 주어 사용하기도 했다. 원·방·각형 위쪽에 배치된 약동하는 원형은 1기형 표상이고 그 아래에 배치된 원·방·각형은 3기형 표상이니 1기가 곧 3기라는 의미이다.(<자료1-2-右>) 또한 본질인 ‘일기·삼기’가 펼쳐지고 어우러져 현상의 물질세계가 만들어지게 되는 과정을 표현한 것으로 5기형 표상과 9기형 표상도 있다. 중앙의 일기·삼기가 현상의 물질계를 이루는 4대 원소로 분화되는 과정을 표현한 5기형 표상(<자료1-3>), 현상의 물질계를 구성하는 4대 원소를 다시 각각의 律·呂(음·양의 한국선도적 표현)로 나눈 9기형 표상도 있다.(<자료1-4>)

<자료1> ‘단학’의 기표상

▲ 4. 9氣

 단학의 이 표상들이 의미있는 이유는 이들이 한국 상고 이래 각종 祭天儀器나 신성표상물로 널리 사용되어 오던 기표상의 전통을 정확하게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표상물의 원류는 동아시아 상고문화의 원류인 倍達古國 紅山文化의 祭天儀器나 司祭王의 權杖類 등이다. 배달고국의 기표상물들은 배달고국을 직접적으로 승계한 한반도‧만주 일대는 물론 중원 일대, 일본 열도 일대를 막론하고 동아시아 일원으로 널리 전파, 동아시아 신성 표상물의 원형이 되어오고 있다. 이중에서 한반도․만주 일대, 곧 한국사에 나타난 기표상물들을 아래에 제시하였는데, 이들을 ‘단학’ 기표상의 원류로 바라보게 된다.(<자료2>)

<자료2> 배달고국 홍산문화 이래 한반도․만주 일대의 기표상

▲ 4. ‘9氣’

 이상에서 단학의 기표상들이 배달고국 홍산문화 이래 한반도․만주 일대로 전해진 기표상물 전통, 더 정확하게로는 한국선도의 기학 전통을 정확하게 계승하고 있음을 살펴 보았다. 삼국시대 이후 한국선도의 침체 과정에서 한국선도 기학의 원의미가 잊혀지고 민속·무속 등 다양한 형태로의 곡해가 일어나게 되었는데, 그 오랜 시대의 격간을 뛰어넘어 선도 기학의 원형이 회복된 것은 대단히 큰 의미가 있다. 이렇게 현대 단학에 이르러 한국선도 기학이 새롭게 되살아나고 정립됨으로써 한국선도는 새로운 발전의 기반을 다질 수 있게 되었다.

②편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