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수 작가는 그림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규빈 양에게 일러스트의 스케치부터 채색까지 다양한 기법을 알려주고 있다.

“여기서는 이렇게 색연필로 3단계 정도로 나눠서 표현해내면 좋겠죠? 그리고 여기서는 무취석유로 이렇게 쓱쓱 문질러주면 얼룩이 자연스럽게 퍼져요. 자, 이제 규빈 학생이 한 번 해봐요.”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이하 벤자민학교)에 다니고 있는 성규빈 양을 인터뷰하기 위해 만난 곳은 바로 규빈이의 멘토인 한지수 작가의 작업실이었다. 한 작가와 규빈이는 그림 한 장을 가운데 두고 알콩달콩 재미가 좋다.

무슨 이야기인가 궁금하여 한쪽 귀를 대고 들어봤더니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또 관심이 큰 규빈이는 한 작가로부터 일러스트를 배우고 있었다. 한 작가는 “규빈이는 아직 진로를 안 정했다고 하는데, 일러스트를 알려주면 스펀지처럼 흡수해서 잘 해내니까 수제자로 삼고 싶은 정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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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학교의 특별한 커리큘럼 중 하나는 바로 ‘멘토링’이다. 벤자민학교 학생들은 모두 1~2명의 멘토를 두고 있다. 아이들은 자신의 적성이나 관심사에 따라 멘토를 선택했다. 한 작가는 멘토 중에서도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가위바위보를 잘해 우선권을 갖게 된 규빈이가 한 작가를 멘토로 후딱 선택했다는 후문.

▲ 한지수 작가는 지난 4월 23일 벤자민학교 4월 학생 워크샵에서 멘토 강의를 통해 아이들을 만난 바 있다. 

한 작가는 지난 2006년 첫 일러스트 동화책을 출간한 뒤 최근 어른을 위한 영성 동화 <영혼의 새>를 선보이며 세간의 큰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영혼의 새>는 벤자민학교의 설립자이기도 한 이승헌 총장(글로벌사이버대)이 이야기를 쓰고 한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이를 계기로 벤자민학교 멘토로 활동 중인 한 작가는 지난 4월과 6월 벤자민학생 워크샵에 참석하기도 했다.

“4월 워크샵 때는 멘토 강의를 하러 갔었고 6월 워크샵에는 학생들의 초청을 받아 다른 멘토들과 다 같이 갔었다. 그런데 단 두 달 사이에 아이들이 정말 많이 바뀌어 있어서 놀랐다. 4월만 해도 좀 어색해하기도 했었는데 6월에는 아이들 모두 무척 환하고 밝았다. 내가 아이들로부터 빵빵하게 충전을 받고 왔다.”

일러스트 작가이다 보니 한 작가는 종종 학교에서 멘토활동이나 강연 요청이 들어온다고 한다. 서울의 교육열 높은 한 중학교에서도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당시 아이들을 생각하면 벤자민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의 변화는 더 큰 충격이었다.

▲ 일러스트작가이자 벤자민인성영재학교 멘토로 활동 중인 한지수 작가(좌)와 한 작가의 멘티 성규빈 양

“중학생들인데 아이들이 너무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었다. 아이들 표정은 마치 세상을 이미 다 산 사람처럼 에너지가 없었다. 한창 기운 넘칠 나이에 경직된 채 앉아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얼마나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

한 작가는 획일적인 교육 시스템에 대한 안타까움도 함께 말했다. 자신이 그림을 그려왔던 만큼 미술 교육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말이다.

“기본적인 표현 방법은 배워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틀에 짜여진 기술들만 갖고 창조가 이뤄지지는 않는다. 미술은 특히 더 그렇다. 창의성을 최대치로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 미술인데, 기술만 뛰어나다고 해서 창의적인 작품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 않나.
아이들 얼굴 생김새가 다 다르듯이, 아이들마다 배우고 깨쳐나가는 방법 또한 다 다르다. 아이들이 선택권을 갖고 성향이나 관심사에 따라 공부해나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게 벤자민학교 아니겠는가.”

벤자민학교 멘토로 활동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어른들이 평가하기에 편한 방식으로 만든 기존의 교육 시스템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선택하고 또 배워나가는 학교, 아이의 가치를 이끌어내는 학교였기에 적극적으로 멘토 활동을 하기로 한 것이다. 내년 예비 입학생들을 위해 소그룹 멘토링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다른 것일 뿐, 못하는 것은 아니다. 공부든 미술이든 성적으로 순위를 매기고 아이들에게 열등감을 심어주는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그만큼 규빈 학생, 벤자민학교에 거는 기대도 크다. 인성영재로 자라난 아이들이 만들어갈 우리 사회가 정말 궁금하고 또 기다려진다.”

▲ 한 작가의 멘토링에 따라 규빈 양이 그린 일러스트의 한 장면. 한 작가는 "자는 모습이 규빈 학생과 꼭 같다"며 예뻐했다.

규빈이는 벤자민학교의 필수 커리큘럼인 벤자민 프로젝트로 ‘영혼의 새 길거리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책 <영혼의 새>와는 다르다. 규빈이는 “영혼의 새를 통해 저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한 그림들로 전시회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오는 11월을 목표로 가능하다면 안동과 서울 두 곳 모두에서 진행하고 싶단다.

‘영혼의 새’를 그린 한 작가는 규빈이의 프로젝트 이야기를 듣고 무척 놀랐다고 했다.

“벤자민학생들은 이렇다. 정말 막힘 없이, 거침 없이 도전하는 것이 놀랍다. 자신감과 열정으로 무엇이든 선택하고 또 이뤄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아이들이지만 정말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