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는 시험기간이 아니면 친구들과 놀다가 집에 오거나 게임을 하거나 둘 중의 하나였어요. 그때는 제 인성이 가면 갈수록 문드러져 가는 것을 깨닫지 못했어요. 여기 와서 깨닫게 됐죠. 생활방식을 바꾸기 위해 뭔가 새로운 행동을 하면서 바꾸고 있어요.”

대안학교인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이하 벤자민학교) 1기생 김도원 군(17)은 지난 17일 서울 남산 유스호스텔 근처에서 그간의 변화를 이같이 말했다. 지난 3월 입학식에서 “인격수양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던 그였다.(바로가기 클릭)

코리안스피릿과의 인터뷰 이후 4개월 만이었다. 김 군의 변화는 성적이었을까? 아니다. 그는 환한 웃음으로 답했다.

▲ 영화감독을 꿈꾸는 벤자민인성영재학교 1기생 김도원 군(사진=윤한주 기자)

“친구들이 좀 웃으라고 할 정도로 안 웃었어요. 지금은 잘 웃어요.”

김 군은 인성영재의 모델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의 자서전을 읽었다.

“평생 자신의 인성을 계발하기 위해 힘쓴 거잖아요.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성격을 소심함에서 적극성으로 바꾸는 것을 몇 년 해도 힘들죠. 그런데 평생 하셨으니,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벤자민 프랭클린은 삶의 목표를 대통령이나 정치가, 사업가가 아닌 완전한 인격자에 두었다. 그 목표를 위해 13가지 덕목을 정했다.  ‘절제, 침묵, 질서, 결단, 절약, 근면, 진실, 정의, 중용, 청결, 침착, 순결, 겸손’ 등이 그것이다.(바로가기 클릭)

김 군도 따라 했다. 처음에는 13가지 덕목을 했다. 그러다가 너무 많은 것 같았다. 한 가지로 줄였다. 그것은 무엇일까?

“긍정이에요.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겠다. 긍정도 나의 상태를 완화시킬 수 있고 힘든 상황에서는 상황판단능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봐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다가 알고 보니깐 비관적인 상황이 오고...아,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중심을 잡고 있으면 비관적인 상황에서 긍정을 하되, 비관적으로 가지 않는 것 같아요.”

김 군의 일과는 자기 주도적이다. 누가 시켜서 마지못해 하는 것은 없다. 월요일과 금요일은 검도를 배운다. 수요일은 전주 영상시나리오스쿨에 간다. 화요일과 목요일은 서울 미지학교에 온다. 주말에는 수학 학원에 다닌다.

지난주에는 처음으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도 했다. 이는 벤자민학교만의 직업체험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일단은 사회생활을 해본 거잖아요. 사회에 나가기 전에 미리 체험해본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어요. 직장 상사와의 관계, 동료와의 관계가 있죠. 또 손님들에게 어떤 말투로 대하고 어떤 행동을 취하는가? 그런 거예요.”

김 군이 편의점으로 출근하는 시간에 친구들은 학교에 다닌다. 친구들은 어떻게 볼까?

“친구들은 (내가) 생각이 있으니깐 했다고 말해요. 학교 안 다니면서 공부도 알아서 하고 부러워하기도 하죠.”

처음 하는 아르바이트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아이들이 중간고사가 끝나자 편의점으로 몰려온 거예요. 정신없이 계산하고 있었죠. 그런데 치킨을 3개 시켰는데 4개를 시켰다는 거예요. 저보고 3개만 줬다고 따지는 거에요. 그런데 계산 기록을 찾았지만 3개로 되어있는 거예요. 사장님이 오셔서 그냥 1개를 주라고 하셨어요. ‘네가 정확하게 파악한 게 아니잖나? 그럴 때는 한 개 주는 게 낫다’고 말에요. 그때까지 손님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대했어요. 그 다음부터 마음을 열기가 힘들었어요. 어느 정도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죠.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도요.”

그동안 번 돈은 학원비와 교통비, 생활비 등에 썼다.

▲ 카메라를 들고 있는 벤자민인성영재학교 1기생 김도원 군(사진=윤한주 기자)

김 군은 입학식에서 “팔루자사건을 모티브로 1시간짜리 장편 머시네마(머신+애니메이션+시네마)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당차게 밝혔다. 지금은 잘되고 있을까?

“‘박하사탕’을 제작한 전재영 PD님을 권범석 멘토님을 통해 소개받았어요. 그 분 말씀 들어보니까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을 영화로 만들어보라고 하셨어요. 처음에는 나에 대해 잘 모르는 말씀이라고 생각했어요. 컴퓨터만 하는 아이로 아시더라고요. 그런데 가면 갈수록 같이 촬영했던 사람도 의지가 떨어지고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보니까 추진력도 떨어지고 온라인이라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이렇게 해선 안 되겠다. 오프라인으로 해야겠다. 그래서 전주 시나리오스쿨로 간 거예요. 우리 학교에 다니면서 얻은 깨달음으로 시나리오를 써보겠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요즘엔 영화감독이라는 꿈도 흔들리고 있어요. 권범석 멘토님도 예전에는 PD가 꿈이었데요. 무역회사에 입사했다가 대학원 공부를 한 뒤 변호사가 되었다는 거에요. 꿈은 계속 바뀌는 것이라고 조언해주셨어요. 감독 말고 해보고 싶은 것은 많아요. 제 프로젝트는 확실한 꿈을 찾고 그것을 어떻게 이룰지 정하는 것으로 바꿨어요. 그래서 이렇게 많은 활동을 해보는 거에요.“

그는 남은 기간에 자유롭고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내년에는 검정고시나 수능을 볼 생각도 있고 복학도 고려하고 있다. 그때가 되면 2기 후배들이 생길 것이다. 이들을 위한 선배의 조언을 들어보자.

“저는 뭔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해져요. 학교에 다니는 시간보다 더 가치 있는 시간으로 남을 것이라고. 이전과 뭔가 확실히 달라질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변화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