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조명체크!"
"카메라 들어갑니다. 스탠바이, 큐!"
과학 토크쇼가 진행되는 한 방송국 스튜디오. 스태프 티셔츠를 입고 쿵쾅쿵쾅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무대 위를 바라보는 18세 여학생이 있다.

'와, 이렇게 방송이 진행되는구나. 멋지다, 정말! 이 느낌이야. 커서 꼭 방송작가가 되어서 다시 방송국에 와야지.'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다. 교실이 아니라 가정과 지역 사회에서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자신만의 꿈을 찾아가고 있는 임서완 양을 8월 21일 과천에서 만났다.

▲ 임서완 양은 벤자민학교 활동을 통해 '방송작가'라는 꿈을 찾았다고 했다.

- 꿈의 현장을 체험하고 삶의 목표를 정하다

"이전에는 꿈을 말할 때마다 찜찜했어요. 진로조사서에 고민하다가 써 내린 글자들은 사실, 꿈이 없다는 것에 대한 피해의식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방어막이었거든요. 그런데 벤자민학교에 들어오고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되었죠. 무엇보다 여러 멘토님의 도움으로 방송국에서 인턴을 하면서 방송작가라는 꿈을 찾았어요. '이거다!' 그리고 '난 무조건 이쪽인데?' 라는 확신이 생겼죠. 진짜 원하던 꿈이 생긴 것만으로 요즘 참 좋아요."

방송국 직업체험을 회상하는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이하 벤자민학교) 1기 임서완 양의 눈빛이 반짝였다. 첫날,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잔뜩 긴장하고서 들어서서 지원했던 방송작가 팀에 배정받았다. 자료를 찾아달라는 지시에 열심히 인터넷을 뒤졌는데, 정말 방송에 자신이 찾은 이미지와 자료화면, 설명 등이 실리는 것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어 진행된 인턴 기간 동안 대본 인쇄물을 자르거나 프로그램 녹화 현장에서 방청객을 안내하며 스스로 정직원이 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글을 쓴다고 생각했던 방송작가가 기획에서부터 자료찾기, 섭외, 자막 등 다양한 일을 하는 것을 보면서 생각도 훨씬 넓어졌다. 구어체의 말을 즉석에서 세련된 어휘로 바꾸는 작가들을 보며 어휘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힘들다고 하면서도 열심히 하는 작가를 보며 '어떤 일을 하더라도 책임과 최선을 다해야 하는구나!'라고 다짐했다. 몸도 마음도 즐거운 자신을 보며 꿈의 현장을 만난 기분이었다.

"꿈이 있다는 건, 혹시 나중에 바뀔수도 있겠지만 제가 도전할 수 있다는 강한 긍정을 불러일으켜요. 꿈이 생기니까 긍정적인 마음도, 목표를 정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생겼어요."

사실 서완 양은 벤자민학교 이전부터 혼자 공부하고 있었다. 학교 행정실장이던 어머니는 공부만 하고 경쟁 시스템에 갇힌 아이들이 안타까워 중학교를 졸업한 서완 양에게 고등학교 진학 전에 시간을 가져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였다. 서완이도 입시공부만 3년 하는 게 싫어서 혼자 공부하고 꿈도 찾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검정고시 학원에는 적응이 안 되고 아르바이트도 잠깐, '죽도 밥도 안되는 기분'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복학을 준비하던 시점에 벤자민학교 설립 소식을 들었다.

▲ 임서완 양의 벤자민 학교 활동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YTN에서 친구들과 함께 방송국 인턴으로 활동, 자신의 성장과정 발표, 단무도 공연, 아르바이트하던 음식점에 부모님이 찾아오셨을 때

스스로 공부할 거리를 찾고 일정을 짜게 하면서도 멘토링을 해주는 벤자민학교 시스템 덕분에 불안하던 서완 양은 잘 적응했다. 원래 글 쓰는 데 관심이 많아 정치나 연예 등의 뉴스와 칼럼, 책을 읽고 매일 전통무예인 단무도로 체력과 마음을 단련했다. 매주 학교 과제를 하며 영어 공부도 하고 앞으로는 인터넷에서 영어수강도 할 예정이다.

사회경험 과제로 집 근처 막국수 집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돈과 사람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다. "음식점에 조선족 아주머니나 언니가 아르바이트하러 많이 왔었어요. 처음에는 편견이 있었는데 일하면서 그런 게 많이 깨졌어요. 3개월간 꾸준히 하다가 일정 때문에 그만둬야 했는데, 조선족 이모가 날 잡고 울 만큼 많이 친해졌었어요. 정말 좋은 손님부터, 음식이 늦다고 화내거나 계산 안 하는 사람까지 참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아 그리고 저는 제가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고 내성적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 적극적이고 싹싹한 면도 발겼했고요." 서완 양은 스스로 모은 돈으로 해외연수를 계획하고 있다.

음악, 미술, 체육 등 예능을 해야 한다는 교칙 덕분에 다양한 공부를 한다. 같은 지역의 벤자민학교 동기생인 김민주(18세), 조민영(17세) 학생과 함께 단무도를 배워 무대 위에서 여러 차례 공연을 했다. 중학생 때 배웠던 기타를 다시 연습하기도 한다.

"원래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데, 사실 그러면 불안함이나 불필요한 잡념이 많아지거든요. 그런데 벤자민학교에서는 자의든 타의든 사람들 앞에 나서고 만날 기회가 많으니 적극성이나 긍정적인 성격으로 조금씩 바뀌어요. 몸을 쓰다 보니 근력도 늘었고요."

-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며,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다

다양한 활동만으로 인성영재학교의 1년을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임서완 양은 그 이상의 것이 있다고 했다. 바로 '참 괜찮은 나 자신을 새로 발견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임 양은 매일 일지에 자신의 변화한 모습을 남기고 있다.

"여태까지 나는 어느 것 하나 잘났다고 스스로 자부해 본 적이 없었다. 어른들이나 친구들이 '너는 이런 점이 괜찮다'고 해주어도, 항상 아니라며 겸손 아닌 겸손으로 나를 낮추곤 했다. 없는 것도 만들어 칭찬하며 자신감을 키워도 모자랄 마당에 나는 자신을 부정하고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다.
 
지금도 티 나게 스스로 칭찬하거나 내세우는 건 잘못하지만, 지금의 나를 만족하면서 괜찮아지고 있다고 느낀다. 칭찬을 해주면 고마워하는 점도 발전했고 ‘아, 내가 진짜 이런 점도 있나?’ 하고 나를 돌아보고 받아들일 수 있다. 크나큰 발전이다. 누군가가 아니라 스스로 인정을 해주고 사랑해주면서 그게 정말 기쁘고 감사한 일이란 걸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사람들과 얘기할 때는 항상 편하고 속 깊다는 소리를 듣는 것, 글재주가 있다는 칭찬을 듣는 것, 스스로 여러 가지 정해놓았던 틀을 하나씩 깨는 것도….  지금은 많이 변화했고, 하고 있고, 하게 될 것이다. 점점 부족한 점을 채워나갈 수 있는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루하루 감사드려도 부족하다. 이런 황금보다 귀한, 꿀 같은 일 년을 보내게 해 주신 모든 분과 부모님과 선택한 나 자신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하다. 앞으로 들어올 후배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 임서완 양 가족 사진. 좌로부터 어머니 강다경 씨와 외동딸 서완 양, 아버지 임영철 씨 (사진 강다경 씨 제공)

임 양은 작게만 느껴지던 자신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더 보석 같은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국사에 관심 많은 그녀에게 많은 지원을 해준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인철 부단장과 벌말초등학교 조동미 교사 등 멘토를 비롯해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자신이 성장하고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커졌다. 특히 부모님께는 각별하다.

- "감사합니다." 나의 부모님, 멘토님, 모든 분께

"저는 부모님만한 멘토는 없다고 생각해요. 아버지께선 집안의 가장이자 집안일도 도맡아 해주시고, 바쁘신데 검정고시 학원 등록할 때도 같이 가 주셨어요.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으셔서 죄송할 때도 많아요.

어머니께선 홍익해야 한다고 하시며 인성을 살리는 봉사활동 등으로 바쁘시거든요. 이전에는 제가 집에 안 계신 걸 싫어했고 싸우기도 했었어요. 좋은 일이긴 하지만 굳이 우리 어머니가 하셔야 하나 해서요. 그런데 요즘에는 세월호 참사나 전쟁, 폭력 등 뉴스를 보면서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게 중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다들 힘들다고 안 하면 누가 하겠나?' 하는 생각에 어머니가 이해되기도 하고, 저도 언젠가 동참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렇다면, 인성영재 교육을 받는 서완 양은 '인성영재를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희망이요. 인성영재는 더 좋은 세상 만들기 위한 희망이에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의 입이 열렸다.

"요즘 뉴스를 보면 안 좋은 일이 너무 많아요. 근원적으로는 인성의 가치가 무너져서 생긴 것으로 생각해요. 사람에 의해 생긴 것은 우리가 고칠 수 있잖아요. 정책이 아니라 생각을 고치게 하여 인성을 바로 세워야 하는데 계속 반복되니, 회의감이 들어요.

우리가 컸을 때는 밝은 사회를 만들고 싶은데, 그러려면 누군가는 바꿔야 하고, 그 '누군가'가 더 많아지면 좋잖아요. 그중에 한 명이 나고, 우리 인성이 밝은 사람들인 거죠. 우리 (인성영재)가 대단하지는 않지만,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용기와 밝음만큼은 다들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밝아져서 자신이 희망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희망임을 깨닫길

서완 양이 조곤조곤 생각을 풀어냈다. 또래 아이들처럼 어린 듯 하다가도 한 마디 한 마디에 깊은 통찰력이 전해졌다.

"꼭 큰 인물이 아니어도 나와 주위 사람들과 행복하게 할 수 있으면 영웅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상태로 안된다는 생각만 해도, 더 큰 그림을 바꿀 수 있잖아요. 우리가 그랬듯이 이후에도 벤자민학교에 참 여러 부류의 아이들이 오겠죠. 인성영재 교육을 받으면서 저처럼 생각의 변화가 생길 거고, 그게 시작이에요. 관념이 깨지는 만큼 얻어가고 성장하기도 할 것이고, 나아가 자신뿐 아니라 사회에 도움되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가질 거라 믿어요."

서완 양은 상반기의 다양한 활동을 토대로, 하반기에는 검정고시나 영어 등 진로에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어떤 모습을 꿈꾸고 있을까?

"홍익하는 방송작가가 되고 싶어요. 재미도 좋지만 의미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어요. 이번 인턴 활동 때 작가 팀에서 일했는데, 글만 쓰는 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 접촉하고 부딪히며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제는 진로와 방향성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하며 앞으로 깊고 넓게 홍익할 벤자민학생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