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뇌를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뇌가 나를 보고 있는 걸까?”

▲ 지난달 26일 카오스재단의 뇌과학 콘서트에서 보여진 렉쳐드라마.

지난달 26일 열린 제9회 카오스 뇌과학콘서트의 주제는 “AI가 묻는다 ‘인간, 너는 누구냐?’”였다. 이날 강연과 연극이 하나로 융합된 렉쳐드라마(강극) 속 상황에서 위와 같은 질문이 나온다. 뇌과학도인 수진(김정민 분)은 좌뇌의 언어능력을 담당하는 브로카영역에 생긴 뇌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의식이 깨어있는 상태에서 수술을 한다. 평소 뇌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그녀를 위해 연인 철수(권일 분)는 수술 중인 뇌를 보라고 권유한다. 그때 수진은 모니터를 통해 수술하는 뇌를 바라보며 던질 질문은 ‘나’라고 하는 존재에 대한 의문이다.

▲ 카오스 뇌과학콘서트에서 공연된 렉쳐드라마에서 뇌와 인간의 관계에서 "나라고 하는 존재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강극에서는 뇌과학을 통해서 ‘나’라고 인식하는 존재의 근원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뇌공학도 수진, 철수와 토론하던 루디 교수(안병식 분)는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를 ‘두개골이라는 동굴에 갇힌 뇌’로 해석했다. 또한 프란시스 베이컨의 4대 우상 중 종족의 우상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으로서 갖게 되는 편견” 동굴의 우상 “우리가 개인으로서 갖게 되는 편견”이라는 관점에서 인공지능 AI를 바라보았다. 루디 교수는 “AI가 인간의 자아나 영혼에 관한 빅데이터를 학습한다면 마치 자아나 영혼이 있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날 첫 강연자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는 ‘인간의 지능, 인공지능과 무엇이 다른가.’를 주제로 열띤 강연을 펼쳤다. 정 교수는 “인공지능을 알아보기에 앞서 인간 지성은 현재 어디까지 와있는지, 우리는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라고 서두를 열었다.

그는 ‘인공지능시대에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논제에 대해 “현재 대한민국은 효율화, 정량화, 획일화에 급급한 것이 현실이고, 이는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훨씬 잘할 수 있는 일들”이라며 “우리의 과제는 인공지능보다 인간이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전뇌적 사고를 하는 인간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가 지난달 26일 카오스 뇌과학콘서트에서 강연하는 모습.

이날 감동근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우리 뇌를 흉내 낸 알파고’를 주제로 AI와 사람의 두뇌 대결에 대한 관점으로, 임창환 한양대 전기생체공학과 교수는 ‘뇌공학의 미래와 사이보그의 탄생’을 주제로 뇌공학과 인공지능의 발전이 가져올 미래상을 전망했다.

인공지능 시대에 대한 두려움의 저변에는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다

우리는 왜 인공지능(AI)이 발달된 미래에 두려움을 갖는 것일까?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바둑대결에서 당연하게 예상했던 이세돌 9단의 승리가 난항을 겪고 결국 총 다섯 번의 대결에서 1대 4로 알파고가 승리했다. 막연하고 먼 미래로만 여겼던 인공지능이란 존재가 한국인에게 실감나게 다가온 순간이었다. 이때 가장 논란이 된 문제는 ‘직업’이었다.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인공지능에 의해 인간은 미래 직업세계에서 밀려나는 것은 아닌가?

실제 스포츠, 증권, 기상예보 등 몇몇에서는 인공지능이 쓴 기사가 상용되고, 미국 뉴욕의 대형 로펌 베이커&호스테틀러는 인공지능 변호사 로스를 채용, 아니 사용하는 계약을 했다.

▲ 뇌과학과 인간의 존재론에 대한 렉쳐드라마. 지난달 26일 카오스 뇌과학콘서트는 강연과 연극이 결합된 공연을 통해 뇌과학에 관해 심도있게 접근하게 했다.

두려움의 근거는 인간이 노동에서 해방되어 풍요롭고 인간다운 삶을 누릴 것이라는 희망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기업의 이익이 가장 우선 시 되는 자본주의, 물질문명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바닥에 잠재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 기자는 영국사, 산업혁명사에 관심을 둔 지인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산업혁명 당시 비참한 현실을 이해하는 코드로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원문을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었다.

산업혁명당시 대지주는 수익이 훨씬 많은 면양을 사육하기 위해 농지의 소작농을 몰아냈다. 쫓겨난 소작농은 런던 등에서 도시빈민 노동자가 되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으로 공장제 노동에서는 종전처럼 육체적 힘이나 개인의 특출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공장을 가진 자본가들은 남자 노동자의 1/3 정도의 급여만으로도 쓸 수 있는 여성과 어린이 노동자를 쓰기 시작했다.

남성노동자는 일을 하고 싶어도 실업상태였고, 아이들을 내보내서 노동을 하게 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가난의 시스템 속에 인간다운 삶이 무너졌다. ‘행복한 왕자’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거리에 나선 성냥팔이 소녀에게 눈에 박혀있던 사파이어를 가져다준다. 그 안에 묘사된 상황은 더할 수 없이 비참하다.

▲  인공지능이 발달된 미래의 모습으로 인간의 뇌를 로봇에 이식하는 브레인 임플란트를 소개했다.

인공지능의 발전에 두려움을 갖는 저변에는 이렇듯 이익을 위해 인간의 가치를 내팽개친 비정한 자본주의의 경험 때문은 아닐까? 자본가들이 노동운동을 하거나 휴식과 저녁이 있는 삶을 요구하는 노동자 대신 지치지 않고 불평 없이 작업을 하는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는 것이 더 이익을 남기는 방식이라고 여기지 않을까?

지금 뇌과학의 발달이 가져온 산물은 인공지능 로봇을 제작하는데 역할을 하고 있다. 카오스 뇌과학콘서트에서 미래에 인간의 뇌를 모방하고, 인간의 뇌를 읽을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다고 한다. 그 기술은 대다수 인간의 행복에 기여하게 될까?

무엇을 위한 인공지능의 개발인가?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가르칠까?

얼마 전 예능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서 가수 김건모가 스마트폰 앱 기능으로 대화하며 외로움을 해소하는 장면이 나왔다.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대신 인공지능과 대화하고 위로받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나오는 로봇과의 사랑, 뇌를 이식하거나 자신의 의식을 다운로드하는 트렌스 휴머니즘, 즉 로봇 몸체에 뇌를 이식함으로써 영생을 추구하는 인간의 일들이 결코 상상으로 그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인류는 인간의 뇌가 상상한 모든 것이 실현해 왔다. <은하철도 999>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기계로 된 몸을 받기위해 우주를 여행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에는 “인간이 왜 기계로 된 몸을 원할까?” 라는 의문을 가졌다. 애니메이션 장면 중 인간이 하찮은 가치로 인식되는 장면이 등장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야 할까?

▲ 지난달 26일 열린 카오스 뇌과학콘서트에서 인공지능이 발달한 미래에 인간의 뇌를 읽는 센서 개발을 미래 신산업으로 소개했다.

우리는 인공지능이 발달된 미래를 맞이하기에 앞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과연 누구인가? 인간다운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교실에서, 학원에서 지식을 담아내는 아이들이 아니라 인간다운 사유를 하며, 감성과 인성이 살아 숨 쉬는 아이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숨통을 열어줘야 할 것이다.

얼마 전 부산 해운대 바닷가 백사장에서 정화작업을 하며, 한 여름 피서객으로 훼손된 바다를 살리자는 ‘바다지기 활동’을 하는 청소년들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교 자유학년제를 도입한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의 학생들이다. 1년간 지식교육 대신 자신의 꿈을 찾아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도전하고, 각종 사회참여 활동으로 인성을 키운다는 아이들의 눈빛에서는 자유로움과 희망을 발견했다.

▲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 아주대 감동근 교수, 한양대 임창환 교수가 인공지능의 개발과 미래상에 관한 토론을 하는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