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는 길이었습니다. 한 여성이 리어카를 미는 할머니를 돕고 있더군요. 저도 얼른 가서 손을 보탰습니다. 리어카엔 폐지가 가득 담겨있었습니다. 이제는 전국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풍경입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폐지를 주워 담는 모습. 그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대한민국이 노인 빈곤율 1위임을 보여줍니다.

양로원은 어떤가요? 지난달 추석을 앞두고 배꼽힐링 봉사활동을 가는 날이었죠. 서울 강남구의 한 양로원을 방문했을 때, 어르신들은 화투 치는 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화투 말고 다른 여가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대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노년의 삶은 놀이마저 가난하게 만듭니다.

요즘 극장가엔 노인을 주제로 한 영화가 상영되고 있습니다. 이재용 감독의 <죽여주는 여자(The Bacchus Lady, 2016)>입니다. 서울 종로 일대에서 노인들을 상대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박카스 할머니’, 소영(윤여정)이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박카스란 성매매를 상징합니다. 그녀는 노인들 사이에서 ‘죽여주게 잘하는’ 여자로 입소문이 납니다.

 
▲ 영화 '죽여주는 여자' 스틸컷
 
노인의 성(性)과 사랑을 다룬 영화는 <죽어도 좋아(Too Young To Die, 2002)>와  <님아, 강을 건너지 마오((My Love, Don't Cross That River, 2014)> 등이 있습니다. 노인들의 애틋한 사랑이 진한 감동을 주는 작품이었죠. 반면 <죽여주는 여자>는 관객에게 감상이 아니라 실상을 보여줍니다. 늙고 죽는 인생의 마지막 문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고. 묵직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집니다.
 
소영은 노인의 성욕과 함께 죽음도 해결해줍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할 힘이 없는 노인들의 마지막 길을 열어주는 것이죠. 제목 그대로 '죽여주는' 역할입니다. 물론 성매매와 자살을 돕는 행위는 불법입니다. 그것을 알지만, 정부나 가족도 노인들의 고충을 덜어주지는 못합니다. 
 
영화에서 병상에 누운 할아버지는 자신의 처지가 한없이 초라하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속내는 차마 자식에게 열 수가 없습니다. 소영은 노인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계청은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들의 빈곤율이 무려 49%(2014년 기준)라고 발표했습니다. 절반에 달하는 동년배 소득의 50% 이하를 번다는 뜻이죠. 자살률 또한 최고입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OECD의 자료를 바탕으로 설명한 바에 따르면 10만 명 당 120명입니다. OECD 평균인 10만 명 당 18명보다 6배나 높은 수준입니다.
 
노인 또한 꽃다운 어린 시절과 혈기왕성한 청년기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인생의 꽃들이 나이가 들수록 떨어지고 겨울나무처럼 혼자 남은 것입니다. 삶에 대한 무력감이 깊어질수록 ‘이렇게 사느니 죽고 싶다’는 욕구가 됩니다. 단순히 고령연금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어르신들의 몸과 마음에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주목되는 것은 소영의 마지막 길입니다. 그녀의 죽음을 가슴 아파하고 눈물을 흘려줄 사람이 없습니다. 혼자 왔다가 떠나는 인생이라고 하지만, 허무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른바  무연사(無緣死)인 것이죠. 2010년 일본 NHK의 특집방송 '무연사회(無緣社會)’에서 따서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일본의 큰 사회문제라고 하지만, 한국 또한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노인의 가난과 죽음에 대한 주제는 다소 무거울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과제입니다. 정면으로 마주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행복한 나이 듦, ‘웰에이징(Well-Aging)’에 주목할 때입니다. 장수가 아니라 장생(長生)이죠. 어르신들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힘. 그 생의 의지가 건강과 행복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노인만이 아니라 중년과 청년을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