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은행잎 낙엽이 수북이 쌓이는 모습은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한다. 이제 부드러운 담요처럼 풍성했던 은행나무 잎도 차가운 바람에 거의 다 쓸려갔다. 잎이 마치 오리의 발처럼 생겼다고 은행나무를 ‘압각수(鴨脚樹)’라고도 한다.
충청북도 청주시 중앙공원의 ‘압각수’는 천 년을 지켜온 은행나무이다. 매년 정월 대보름에는 그 앞에 시민이 모여 국태민안을 위한 ‘망월제’를 정성껏 올린다. 성스러운 은행나무를 기린다는 뜻으로 ‘행목 성신제’라고도 한다. 이 나무를 청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최고 어르신으로 대접한다. 이 나무와 관련하여 실제 역사가 기록되어 전해온다. 전설이나 상상이 아닌 한 나무가 잉태한 소위 ‘팩트’이다.

▲ 청주시 수령 9백 년의 '압각수'.

1390년(고려 말 공양왕 2년) 5월의 이초(彛初)의 옥사가 벌어졌다. 이성계 일파의 옹립으로 공양왕이 즉위하자 고려의 무신 윤이(尹彛)·이초(李初)가 명나라에 찾아가 이성계가 명나라를 치려 한다고 무고했다. 이에 이성계는 목은 이색(李穡, 1318~1396), 양촌 권근(權近, 1352∼1409) 등 자신을 반대하는 주요인물 10여 명을 청주의 옥에 가두었다. 그해 여름 청주에서는 대홍수가 일어났고 관아는 물론 시내의 집과 감옥도 물에 잠겨 죄수들이 떠내려갔다. 이색은 큰 나무에 올라가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는데, 이 나무가 당시 수령 300년으로 추정되는 압각수였다. 이 소식을 들은 공양왕은 이는 하늘이 무죄를 입증하는 것이라며 이들을 풀어주었다. 권근은 후일 태조 이성계의 총애하는 신하가 되어 이 압각수의 이야기를 시로 남긴다.

 목은 이색은 포은 정몽주(1337~1392), 야은 길재(吉再, 1353~1419)와 더불어 고려 말의 ‘삼은(三隱)’이라 불리며 칭송받는 대학자이다. 이색은 선비의 나라 조선을 설계한 삼봉 정도전(1342~1398)과 고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의 스승이다. 그는 “정도전은 벼슬에 나가면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하고 어떤 일을 당해도 회피할 줄 몰랐으니, 옛날의 군자도 우리 정도전과 같은 사람은 많지 않다.”라고 칭찬했다. 한편 개혁세력인 정도전에 맞서 끝까지 고려를 지키고자 목숨을 바친 정몽주에게는 “학문이 매우 탁월하고, 부지런하며 그가 말하는 것은 어떠한 말이라도 이치에 맞지 않은 것이 없다.” 라고 칭찬했다.

스승이 칭찬하며 아끼던 두 제자의 높은 식견과 지조는 ‘갈라섬’으로 결국 고려의 망국이 앞당겨진다. 이방원(1367~1422)에 의해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압살당하고 조선이 개국 되니 새 나라의 모든 기틀을 정도전이 세워간다. 그러나 정도전 또한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하여 이색이 아끼던 두 제자는 한 사람에 의하여 차례로 참혹한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방원은 결국 옥좌에 올라 후일 태종이 된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을 청주의 압각수는 어떠한 마음으로 보고 있을까. 지금은 깊게 갈라진 양극을 해소하고 아우를 수 있는 많은 ‘어르신’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답은 오직 하나뿐이다.

"국민이 스스로 어르신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