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전 3월 1일 정오. 열강의 발밑에 짓눌린 세계의 변방,  동아시아의 ‘빼앗긴 나라 조선’에서 세계역사상 가장 거대한 국민저항운동이 시작되었다. 고종황제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기폭제가 되었다. 고종은 1919년 1월 21일 이른 아침, 덕수궁 함녕전에서 승하하였다. 고종의 시신을 직접 본 민영달의 말을 기록한 윤치호의 일기는 독살을 의심케 한다. 67세로 비교적 건강하던 고종은 자정이 좀 지나 식혜를 마신 지 30분도 안 돼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죽어갔다. 시신은 이가 다 빠져있고, 혀는 심하게 상했으며, 목에서부터 복부까지 검은 줄이 길게 나 있었다. 팔과 다리는 심하게 부어올라 수의로 갈아 입히기 위해 옷을 찢어야 했다. 의심을 더하는 사실은 몇 달 전 고종이 모르는 사이에 어의(御醫)가 경질되었고, 사건당일 고종이 있는 덕수궁에서 숙직한 인물은 이완용, 이기용 등 친일파이었다. 사건당일 고종의 수라를 맡은 궁녀 2명이 이유를 알 수 없이 차례로 죽어갔다.

▲ 세계국학원청년단’의 삼일절 만세운동 재현

이 사실이 퍼져나가자 참혹한 식민지하에서도 기어이 생명의 빛을 회복하려는 한민족의 광복의지에 따라 한반도는 온통 태극기와 붉은 피로 물들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태극기를 볼 수만 있다면,
단 한 번만이라도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칠 수만 있다면
기꺼이 하나뿐인 목숨을 내어 놓았던 마음뿐이었다. 
 멈추지도 않고 꺼지지도 않는 태극의 물결은 마침내 상해임시정부 발족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국부 쑨원(孫文)도 이에 자극받아 중국에서도 일제에 대한 저항운동이 촉발되었다. 이 인류의 자존의 뜻과 기운은 베트남으로, 인도로, 멀리 아프리카의 이집트로 자주독립과 인권함양의 소망이 되어 밀물처럼 번져 갔다. 당시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제국주의의 폭압 아래 신음하던 세계사에 당당하게 고개 쳐든 조선 발 ‘인권과 생명 존엄의 빛을 찾기 위한 절규와 저항’이었다. 이 세기적인 인성회복운동의 중심에는 엄연히 우리의 태극기 정신이 있었다.
6·25 동란을 이겨내고 이역만리 정글에서, 열사의 사막에서, 세계 구석구석에서 우리의 땀과 눈물과 피의 나날을 한결같이 지켜준 것은 태극기이었다. 태극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사에서 유일한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의 상징이 되어 지구촌 위에 휘날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국가 지도급 인사 중에서 태극기와 애국가를 기피하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일부 학생들 사이로 번져가고 있다. 그들은 “꼰대도 싫고, 태극기도 싫고, 나라도 싫다.”라며 ‘헬 조선’을 외친다. 그렇게 보고 듣고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안 될 일이다. 어떻게 지켜오고, 어떻게 키워온 대한민국인가!
이제 태극기에 대한 고결한 배움과 기림이 국민적 정신운동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독립은 이미 이루었으니 이제는 통일 자유대한민국을 위한 장엄한 태극기와 애국가가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헌법적인 가치로 한반도는 통일되고 태극기 아래 하나로 뭉친다면 다시 한번 세계사적인 기적이 창출될 것이다. 태극기의 정신은 천부경(天符經)에 기록되어 있듯이 이미 국경과 이념을 초월하여 우주의 진리에 맞닿은 생명의 영원한 자유와 평화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자유통일은 마침내 우리와 아시아와 세계의 미래를 희망으로 물들일 수 있을 것이다.
2017 정유년의 3·1절 태극기는 정유재란의 명량대첩이 되어 다시 한번 우리에게 기적 같은 승리를 안겨 줄 것이다.

 

(사)국학원 상임고문, 한민족 역사문화공원 공원장 원암 장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