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하여 나라를 사랑했던 막스 베버 또한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일부 지식인들은 패전을 ‘신의 심판’으로 받아들이고 자학하는 모습을 보여 베버는 이를 마음 아프게 받아들였다. 베버는 패전 이후 독일이 처한 현실의 본질을 드러내 슬픔에 빠진 독일인들에게 감명과 용기를 주고자 했다. 그것이 자유학생동맹의 요청에 응하여 한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강연이다. 베버는 1919년 1월 ‘직업으로서의 학문’이라는 강연을 먼저하고 곧바로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강연을 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 강연에서 베버는 정치가에게는 ‘정열’, ‘책임감’, ‘판단력’이라는 세 가지 자질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정열이란 ‘사물의 상태에 즉응(卽應)한다’는 의미에서의 정열, 즉 사물의 상태 업무, 대상, 문제, 현실에 대한 정열적인 헌신이며, 그 ‘상태’를 다스리고 있는 신 또는 수호신에 대한 정열적인 헌신이다. 그는 정치가 경박한 지적 유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진지한 행위여야 한다면 정치를 향한 헌신은 정열에서만 생겨나고 정열에 의해서만 자랄 수 있다고 말한다. 세월호 침몰 당시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베버가 말한 때로 구조에 정열적으로 헌신했더라면 수백 명의 인명을 구했을 것이다. 20세기 초 막스 베버가 말한 정치가의 자질로서 정열이 21세기 대한민국의 정치가들에게 절실하게 요구된다. 하지만 베버는 아무리 순수한 정열이라도 단순한 정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정열은 그것이 ‘일’을 향한 봉사로서 ‘책임성과 결합하고, 이것이 행위의 결정적 규범을 만드는 표준이 되었을 때 비로소 정치가를 만들어낸다고 그는 강조한다.

정치가의 세 가지 자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베버는 정치가의 결정적 심리적 자질은 판단력임을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판단력은 이렇다. 정신을 집중하여 냉정함을 잃지 않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 요컨대 사물과 인간에 대하여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거리를 상실해버리는 것’은 어떠한 정치가일지라도 그것만으로도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베버는 강조한다. 거리를 상실해버리면 정치가는 냉정함을 잃고 그만큼 오판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베버는 ‘거리를 상실해버리는 것’은 ‘정치적 무능력’과 동일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정치가는 하나의 혼 속에 타오르는 정열과 냉정한 판단력을 단단히 붙들어 놓아야 한다.

정치 영역에서 큰 죄는 베버에 따르면 결국 업무의 본질에 충실하지 않은 태도와 또 하나는 무책임한 태도이다. 우리는 지금 국정농단 사태에서 이 두 가지 큰 죄를 목도하고 있다. 이 두 큰 죄의 화근은 정치인의 허영심에 있다. 허영심은 자신의 존재를 될 수 있는 대로 남의 눈에 띄도록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다. 허영심은 일체의 몰주관적인 헌신과 거리 두기,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한 거리 두기를 방해한다. 허영심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정치인에게는 치명적인 적이 될 수 있다. 허영심은 정치가를 가장 강력히 유혹해서 앞에서 말한 두 개 큰 죄를 범하게 한다. 베버는 데마고그(민중정치가)는 ‘효과’를 계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만큼 여기에 빠질 위험도 크다고 지적한다. 즉 연기자가 되거나 자신의 행위의 결과에 관한 책임을 안이하게 생각하거나 자기가 주는 인상만을 염려하는 등의 위험에 부단히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베버는 강연 뒤 부분에서 정치를 이렇게 말한다. “정치란 정열과 판단력 두 가지를 구사하면서, 단단한 판자에 힘을 모아 서서히 구멍을 뚫어가는 작업이다.” 그럼 정치가는 어떠한 사람이어야 하는가. 베버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가 이 세상에 봉사하려는 것에 비하여 현실의 세계가 아무리 어리석고 천해보일지다도 절대로 굴하지 않은 인간, 어떤 사태에 직면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단언할 자신이 있는 인간, 그런 인간만이 ‘천직’으로서의 정치를 갖는 것이다.”
막스 베버가 강조한 정치가의 자질을 생각하며 오는 5월9일 대통령 선거에서는 자질을 갖춘 대통령에게 투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