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1일을 전후하여 1년 중 해가 가장 긴 하지(夏至)가 돌아왔다. 양기(陽氣)가 충천하고, 가만히 앉아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흐르는 뜨거운 날들이 이어진다.

하지는 양기가 충만하다 못해 넘치는 시절이라 몸의 기운이 허해지기 쉽다. 양기가 저절로 소모된다는 것은 기운을 붙들어 줄 음기(陰氣)가 부족하다는 말과 같다. 발산을 상징하는 양기와는 달리 수렴을 상징하는 음기는 자동차로 보면 연료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니 이 무더위를 잘 나려면 부족한 음기를 어떻게든 채워야한다. 수렴의 음기가 있어야 발산의 양기 역시 제대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 하지는 일년 중 해가 가장 긴 날이다.

그럼 어디에서 음기를 찾을 수 있을까?

정점을 찍으면 더 이상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려올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실제로 낮의 길이는 하지에서 최고 정점을 찍고, 보이지 않게 조금씩 짧아진다. 주역의 괘 상으로 하지는 5양, 1음의 시기이다. (천풍구괘) 얼핏 보면 양의 기운이 가득 차보이지만, 저 아래 음의 기운 하나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 주역의 괘에서 하지는 5양과 1음의 시기이다. 천풍구괘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현실의 태양은 뜨겁기만 하다. 식물이라면 도리 없이 태양빛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의 정성과 노력 여하에 따라 기운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양기가 충천한 이 하지에 음기를 북돋는 방법은 무엇일까?

내 안의 음기를 기르는 ‘절수련’

뜨거운 양기가 가득한 하지에는 일을 확장하고 늘리기보다 한 가지라도 하던 일을 무사히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쁘게 움직였던 망종기의 모내기는 끝났고, 이제 논을 꾸준히 돌보는 것만이 농부가 할 일이다. 지속하는 힘은 음기에서 나온다. 산만함과 확장이 양기를 소모한다면 담담한 마음가짐과 수용은 음기를 수렴한다.


‘절수련’은 음기를 기르는 대표적인 수련법이다. 음기를 키우는 방법은 바로 하체단련이기 때문이다. 바른 자세로 천천히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숙이는 동작을 반복함으로써 우리의 하체는 단단해진다. 화기(火氣)가 몰려 열이 가득 찼던 정수리의 열은 어느새 하체로 내려가고, 반복하여 엎드리는 자세를 통해 하심(下心)이 깨어난다. 절수련이야말로 몸과 마음의 중심을 잡는 하지의 최고 수련이다.

▲ 마음을 다스리는 절수련 모습. 절수련은 음기를 다스리는 대표적인 수련법이다.

뜨거운 여름, 열이 머리로 쏠려 마음을 잡아주는 중심이 가벼워지면 별일이 아닌 것에도 쉽게 흥분을 하게 된다. 삶의 ‘중심’이 흔들리면 외부 자극에 민감해진다. 서원(誓願)을 담아 절수련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화기의 태과(太過, 매우 지나침)로 괴로워하던 마음의 중심이 조금씩 제 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절 수련은 스스로에게 예를 갖추는 귀한 의식이다. 다만 그것을 하지에 하는 이유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인, 의, 예, 지, 신(仁義禮智信)의 오상(五常)중, 여름의 미덕은 예(禮)이다. 불빛이 어둠 속에서 길을 비춰주듯이 불의 속성을 지닌 예는 사리분별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이 시기에는 유독 잘못된 것들이 더 잘 보이고, 남의 허물도 더 많이 비난하게 된다.

하지만 하지가 양기의 최고 정점을 찍고, 서서히 내려오는 시절임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자신을 낮춤으로써 알아차릴 수 있다. 남을 들여다보고 탓하기 전에 자신을 들여다보자. 올라가면 내려오고, 내려오면 또 올라간다는 이치를 알면 겸손함의 지혜가 저절로 터득된다. 이것이 바로 자신에게 행하는 진정한 ‘예’이다. 절수련으로 몸과 마음을 온전히 바닥에 내려놓을 때 하지의 화기는 사라지고, 고요히 남은 내 존재의 화두가 오롯이 남을 것이다.

<참고도서>

주역의 지혜 (서광사/ 곽신환)

절기서당 (북드라망/ 김동철, 송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