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고양시 성사고등학교 박경하 교사.

“형님, 모시러 왔습니다.” 3월 초, 수업 시작종이 울리고 교무실을 나서는데, 남학생 대여섯 명이 영화에서처럼 구십 도로 허리를 숙이더니, 출석부, 노트북, 마이크 가방 등을 서로 뺏어 들고 우르르 저를 교실로 모셔갔습니다. 당연히 복도는 웃음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장난처럼 시작된 이 놀이는, 점점 참여하는 아이들이 다양해지며, 평소 수업 시간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아이들과 여학생까지 동참했습니다. 전 이렇게 아이들의 ‘형님’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제 수업을 기다리고, 또 떼로 마중도 오고, 서로 다투듯 제 수업준비물을 나눠서 챙겨 드는 모습은 교사로서 누리는 최고의 기쁨이었습니다.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렇게 도착한 교실, 한바탕 웃음으로 수업을 시작한 것은 당연했으니까요.

올해 새로 학교를 옮기고 제가 한 일은, 수업 시작 전이나 아이들을 만날 때 환하게 웃으며 ‘사랑합니다.’ 인사를 한 것입니다. 굳이 한 가지를 더 꼽는다면, 첫 수업 시간에 ‘모두가 꽃이야.’라는 동요를 들려주며, ‘피는 꽃마다 아름답다’는 말을 전하며 모두가 저마다 향기와 빛깔을 찾는 귀한 만남이 되기를 바라는 제 마음을 전한 것. 또 하나 더, 놀이를 통해 제가 아이들 이름을 모두 외우고 다시 맞추는 게임……. 아이들은 서로 자리를 바꿔 앉거나 안경과 옷 등을 바꾸며 즐거워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고,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하고, 환하게 웃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제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습니다.

같이 교직을 시작한 친구들이 명예퇴직을 고민하는 때, 저는 늦둥이를 얻은 것처럼 아이들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뇌교육을 통해 교육의 새로운 희망을 찾은 저의 변화입니다. 긍정적이고 따뜻한 분위기의 뇌 친화적 환경부터 만들겠다는 노력으로 언제나 환하게 웃기, 먼저 반갑게 ‘사랑합니다.’ 인사하기를 실천하면서 저부터 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행복은 중간고사를 계기로 주춤했습니다. 대학 입시에 중심이 맞춰진 학교 현실에서 시험에 대한 중압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내신, 생활기록부가 입시에서 중요해졌지만, 출결 등 자잘한 일상마저도 수치화하여 아이들을 줄 세워 등급을 매기는, 끝없이 비교하고 경쟁해야 하는 교육 문제의 본질은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엎드려 잠을 청하며 회피하거나, 갖가지 이유로 결석, 조퇴하며 무기력해지는 아이들도 점점 늘었습니다. 높은 청년실업률,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 등 미래에 대한 우려로 대학 진학마저도 회의하는 아이들에게 공부의 당위성은 힘을 잃어 가고, 학교는 그 존립 이유를 다시 찾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 관심이 높다는 거꾸로 교육, 하부루타 교육 등 대안을 찾아 실천하는 동료 교사들의 노력은 절박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시도들도 학교생활 대부분을 수치화하여 한 줄로 세우는 입시 현실에서는 그 길을 잃기 쉽습니다.

근대교육의 출발이 아침 정시에 출근하여 하루 종일 노동해야 하는 산업사회 시스템에 적합한 노동자를 양성하려는 의도였다는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저마다의 가능성을 발견하여 키워주고 정체성과 자아 존중감을 세워주는 것이 교육의 진정한 역할이라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들의 꿈의 크기와 자신감이 반비례하는 우리 교육 현실을 냉정히 돌아보아야 합니다. ‘학교에서 행복하냐’는 질문에 학생들의 응답 결과는 평가에 참여한 65개국 중 65등이고 교사를 대상으로 한 자아 효능감도 23개국 중 23위로 교사도 아이들도 이대로는 더 이상 행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처방으로도 낫지 않는 고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그 병의 근본 뿌리를 찾아야 하듯, 이제 우리도 입시제도 개편이나 교육 방법의 개선을 넘어, 교육을 하는 진짜 목적과 교육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진정한 가치를 다시 정립해야 합니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둘째 아들과 새로 발령받은 저는 같은 학교에 왔습니다. 교사이자 동시에 학부모로 우리 교육 현실을 그대로 겪으며 변화를 원하는 바람이 더 간절해졌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귀하게 여기며, 저만의 개성과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모두가 1등이고 백점인 교육은 어떻게 가능할까? 인간이면 누구나에게 있는 뇌, 선택하면 이루어내는 그 뇌의 가치를 활용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아이들이 공부하는 목적이 좋은 대학가서 월급 많이 받는 혹은 안정적인 직장 얻기를 넘어,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으로 다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을 키워간다면 또 얼마나 가슴 뭉클할까?

교사인 나부터, 또 학부모부터 교육에 관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비교 경쟁을 통한 승자 독식의 성공이 아닌, 모두가 인격 완성과 성장을 위해 ‘나와 민족과 인류를 위해’ 기쁘게 공부할 수 있도록…….

‘꽃들에게 희망을’ 이라는 책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많은 애벌레들이 그것의 허상을 깨닫고 나비의 꿈을 찾아 자신들이 쌓고 있던 그 기둥을 내려오는 장면 말입니다.

곧 2학기가 시작됩니다. 아이들의 ‘형님’으로 새롭게 만날 준비를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더 강력한 선택으로 용기를 내고 계획도 세우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료 선생님들과 ‘뇌활용 행복교육’을 함께 실천하겠습니다. 나부터, 내가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입니다. 교사가 먼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