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은 『경세유표(經世遺表)』 『목민심서(牧民心書)』 『흠흠신서(欽欽新書)』『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등 2백60여 권의 문집(文集)을 써냈다. 이렇듯 다산이 집필한 방대한  저서들에는 그가 제시하는 정치·경제·사회에 관한 다양한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김태희 다산연구소 소장은 10일 서울국학원 주관으로 서울시민청 지하2층 바스락홀에서 열린 제171차 국민강좌에서 이러한 다산 정약용에 관한 자료들을 토대로 그의 세계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전했다. 김 소장은 이날 '다산, 조선의 새길을 열다'를 주제로 강연했다. 

▲ 지난 10일 서울시청 시민청 지하2층 바스락홀에서 제171차 국민강좌가 열렸다. 이날 강의는 김태희 다산연구소 소장이 '다산, 조선의 새길을 열다'를 주제로 강연했다. <사진=황현정 기자>

김 소장은 다산 정약용의 문집 중 가장 대표적인 저서로 『경세유표』를 꼽았다. 경세유표는 다산이 유배 중 전라남도 강진에서 저술한 것으로 48권의 미완성작이다. 원제목은 《방례초본(邦禮草本)》으로 경세유표의 서문에 적힌 '터럭만큼도 병통이 아닌 것이 없는바, 지금이라도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망할 것이다'라는 저술 의도를 비추어 보아 근본적인 개혁을 통해서만 국가와 사회가 유지될 수 있음을 강조한 다산의 뜻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경세유표에는 관제(官制)·군현지제(郡縣之制)·전제(田制)·부역(賦役) 등 당시 조선의 현실에 맞게 정치·사회·경제 제도를 개혁할 구체적인 방안이 담겨 있다.

이외에도 다산은 자신이 집필한 많은 양의 책을 경학(經學)과 경세학(經世學)의 두 가지로 명쾌하게 나누었다. 경학은 유학 경전에 관한 학문으로 주역사전, 상서고훈, 논어고금주, 맹자요의, 대학공의 등이 있으며 경세학은 세상을 경륜하기 위한 학문으로 1표(表)·2서(書)로 불리는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이 있다. 경학은 본(本)과 수기(修己) 즉, 자기 자신을 수양하는 '도덕'을 강조한 학문이며 경세학은 말(末)과 치인(治人) 즉, 세상을 다스리는 학문이다.

김 소장은 "다산은 수기와 치인 둘 중 어느 하나에도 무게를 두지 않았다. '육경(六經)·사서(四書)로 자기 수양을 하고 1표·2서로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니 본과 말을 갖춘 것이다'라는 그의 설명과 같이 둘의 조화를 강조했다"라고 설명했다.

▲ 김태희 다산연구소 소장은 "다산은 수기와 치인 둘 중 어느 하나에 무게를 싣지 않고 그 둘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라고 전했다. <사진=황현정 기자>

다산의 이러한 통섭과 융합의 세계관은 《원목(原牧)》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원목은 '목민관이 백성(民)을 위해 있느냐? 백성이 목민관을 위해 있느냐?'라는 물음에서 출발했다. 먼 옛날에는 백성뿐이었다가 그들 사이에 다툼이 생기니 '공정한 말'을 잘하는 한 어른에게 찾아가 이를 바로잡았다. 이에 모두 감복하여 그를 추대하고 이름을 '이정(里正)'이라 한다. 이것이 점점 커져 여러 마을에서 일어난 문제를 해결한 사람을 '당정(黨正)', 당에서는 '주장(州長)', 여러 고을에서는 '국군(國君)', 여러 나라의 국군이 추대하면 '방백(方伯)', 사방의 방백이 추대하면 '황왕(皇王)'이라 했다. 

그는 황왕의 근본이 이정에서 왔으니 목민관이 백성을 위해 있음을 강조했다. 김 소장은 "아래로부터 여럿이 추대하여 지도자를 선정한다는 점에서 요즘 민주주의와 다를 것 없는 말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산은 또한, 굉장히 강력한 왕권을 주장하는 듯한 말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전제적 절대 군주를 지향한 것이 아닌 군주를 하나의 공적 존재로 생각하며 신료나 장사치들이 사익을 추구하는 것을 억제하는 왕권을 말한다. 왕을 높이기 위함이 아니라 왕정을 시행하기 위한 왕권이라고 할 수 있다.

다산은 각 계층과 상황에 맞게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정치의 과제라고 생각했다. 군자 즉, 귀족은 귀(貴)를 추구하니 인선을 공정하게 하는 지인(知人)정책을 펼치고 소인 즉 소민은 부(富)를 추구하니 세금을 가볍게 하는 안민(安民)정책을 펼치는 것이다. 다산의 경세유표에 이를 위한 구체적 방안이 실려 있으며 김 소장에 따르면 이러한 주장은 다산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조선의 22대 왕 정조(正祖)를 포함해 그의 선배라 할 수 있는 학자들이 종종 주장한 것들이다.

▲ 김태희 다산연구소 소장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수많은 저서에서는 많은 정보와 교훈, 시사점을 얻을 수 있으나 오늘 강연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근검"이라고 했다. <사진=황현정 기자>

끝으로 "물질적으로 쓰는 것은 금방 없어져 버리나 정신적으로 베푸는 것은 향유가 된다"는 그의 말과 같이 다산은 진정한 지도자상은 근검(勤儉)할 것을 강조했다.  김 소장은 "다산 정약용 선생은 매우 많은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그중 각자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교훈이 있을 것"이라며 "국가 경영부터 우리 생활 속 크고 작은 사건과 상황까지 고려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근검이다. 나부터 부지런하고 검소하면 주변, 그리고 나라까지 그 덕성을 본받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다음 172차 국민강좌는 11월 8일 서울시청 시민청 워크숍룸에서 열리며, 이날 홍윤기 박사가 '일본에 전해진 한민족의 신교 문화'를 주제로 강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