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동남아로 배낭여행 갔다 올게.”

“안돼!”

어느 날 배낭여행 가겠다는 딸을 엄마 현자 씨는 반대했다.

요즘 세상이 좋아서 혼자 외국에 나가도 위험하지 않다, 실시간 연락은 일도 아니다, 엄마 걱정 안 되게 자주 연락하겠다. 딸이 갖은 말로 엄마를 설득하지만,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엄마.

“도대체 왜? 왜 안 되는 거야?”

지친 딸이 물었다.

“부러우니까.”

“……”

딸의 외국 여행이 부러운 엄마는 가고 싶으면 ‘나도 데려가’라면서 훼방을 놓는다.

‘엄마와 배낭여행을?’ 쉰 넘어 외국여행 한 번 못 가본 엄마 인생이 짠하긴 하다. 하지만 고생길이 훤하다. 엄마의 보호자 노릇을 감당할 자신도 없다. 이번에는 딸이 이유를 들이댄다. 엄마가 외국 여행을 할 수 없는 이유-나이가 많아서 체력이 안 된다, 김치 없인 못 사는 엄마가 버틸 수 있겠느냐, 여행 간다고 해서 인생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셀 수 없이 많다.

그런데 말이다. 엄마의 고집이 이번에는 꺾이지 않는다.

▲ 엄마와 딸의 이들의 파란만장한 동남아 배낭여행기가 첫눈 출판사의 신간 에세이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에 담겼다. <사진=첫눈출판사>

딸은 하는 수 없이 비장의 무기를 꺼내든다. “엄마가 무슨 돈이 있어, 짠순이가.” 그런데 엄마가 쌈짓돈을 내민다. 적지 않은 200만 원.

엄마와 딸은 함께 동남아로 한 달간의 배낭여행을 떠난다.

이들의 파란만장한 동남아 배낭여행기가 첫눈 출판사의 신간 에세이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저자 키만소리)에 담겼다. 이 책은 딸의 시선에서 쓰였다. 책 제목처럼 배낭을 단디 멘 엄마는 무사했을까. 여행의 끝에서 모녀가 나눈 대화를 보면 조금 짐작이 간다.

“누가 엄마랑 또 온대? 난 한 달도 충분했네요.”

“엄마도 너처럼 구박하고 성질 더러운 사람이랑 안 가.”

그렇게 시작된 엄마와 딸의 ‘나도 너랑 여행 안 가’ 배틀은 말레이시아 공항에서부터 인천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 본문 ‘여행의 끝’ 중에서)

모녀의 여행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엄마 현자 씨 상황을 보자. 들뜬 마음으로 탑승한 저가항공은 생각 같지 않다. TV에서 보던 편안한 항공 서비스는 무조건 제공되는 게 아니었다. 저가항공의 기내 서비스는 유료라는 직원의 안내에 여행 로망이 무너진다. 딸과의 첫 숙소인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어떤가. 딸과 머무는 방에 낯선 외국인이 당당하게 들어온다. 놀라 나가라고 소리 질렀는데 알고 보니 여럿이 함께 머무는 방이다. 엄마에게는 배낭여행자들의 문화가 충격적이다. 숙소에서 잡일을 도맡던 청소부와 과일을 나눠 먹었을 뿐인데 직원으로 오해도 받는다. 여행지에서 만난 모든 순간이 낯설고 당황스럽다.

그러나 엄마는 좌절하지 않는다. 이왕 외국까지 떠나온 거 어떤 상황이든 즐기기로 마음을 정한다. 엄마가 진정한 배낭여행자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단출한 게스트하우스 조식 재료는 엄마 손끝에서 먹음직한 샌드위치로 변신한다. 치앙마이 선데이 마켓에서는 흥정의 달인이다. 상인들의 기를 꺾고 300바트라고 적힌 아기 코끼리 장식을 150바트에 산다. 쁘렌띠안 섬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할 때는 호흡법을 몰라 짠물을 실컷 들이키지만 끝내 다이빙 수료증을 받아들고 뭉클해한다. 늦잠 자는 딸을 숙소에 두고 용감하게 나 홀로 외출도 감행한다. 장을 보고 절에서 공양까지 마치고 돌아온 엄마가 딸 눈엔 미스터리다.

한편 딸 키만소리의 상황을 보자. 이왕 엄마랑 떠가기로 한 거 엄마 앞에서 대견한 모습만 보이고 싶다. 그런데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부터 환전소를 찾지 못해 헤맨다. 효녀 노릇은커녕 똑 부러지는 모습 보여주기도 쉽지 않다. 저가항공에 불편함을 느끼는 엄마를 보며 문득 친구와의 첫 배낭여행을 떠올린다. 엄마의 여행 로망을 깨버렸단 사실이 미안해진다. 돌아오는 비행기마저도 저가항공인데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만 쌓인다.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이런저런 사건에 당황하는 엄마 모습이 재밌다가도 불편해하는 걸 보면 호텔에 모시지 못해 미안하다. 숙소를 옮기려 슬쩍 의향을 물으니 엄마는 괜찮단다. 더 미안해지려는데 배낭여행자의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는 엄마가 내심 자랑스럽다. 종일 자기 곁에만 붙어 있는 엄마가 짜증이 나다가도 막상 혼자 친구 만나려 나와서는 내내 엄마 생각뿐이다. 이기적인 이 딸 역시 미워할 수만은 없다. 자기 욕망도 엄마 마음도 챙기고 싶어 하는 모습이 흔한 자식들의 모습을 닮았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공감 가고, 재밌고, 때로는 뭉클하다. 책 어디에도 엄마와 딸이 애틋하게 사랑을 표현하는 대목은 없지만 두 사람 마음이 느껴진다. 어쩌면 이 모든 건 당신이 엄마와 어딘가로 떠난다면 벌어질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외국 여행이 쉬워진 시대다. 그렇지만 외국으로 딸과 함께 ‘배낭여행’을 떠난 엄마 이야기는 흔치 않다. 이 책의 매력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쉰 넘은 이 엄마가 배낭여행에 도전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뭐든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진한 감동과 여운이 남는 모녀 이야기로, 당신의 일상에 쉼표 하나 찍으면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