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한산성>이 상영되고 있는 요즘 시기에 딱 맞는 현장 남한산성으로 모인다. 11일 이번 현장학습 날에는 갑자기 기온이 내려간다고 일기예보에서 앞다투어 알리는 바람에 든든하게 채비를 하고 갔다. 하지만 예상보다는 따뜻한 날씨에 몸과 마음이 편해짐을 느낀다.

▲ 남한산성 침괘정의 단풍.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남한산성 행궁 앞에는 커다란 유네스코 표지석이 놓여있다. 201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남한산성에는 이날도 수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있었다.  왔다 가는 모든 사람이 유네스코에 등재된 남한산성의 의미를 저마다 가슴속에 묻고 가기를 바랐다.  표지석 근처 종각의 종은 원래 있던 천흥사 동종을 3배 크게 새로 만든 것이다. 옛날에도 이 근처에 종루가 있었고 남한산성의 사대문을 여닫는 시각에 울렸다. 그래서 그 길을 아직도 종로라 부른다.

▲ 남한산성 행궁 정문 한남루.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남한산성 행궁은 인조가 병자호란 당시 한양도성을 버리고 피난 왔던 곳이다. 행궁은 잠시 지나가는 공간이지만 임금이 직접 머무는 곳이기에 격식을 갖추어 세웠다. 삼문, 삼도, 내전, 외전, 일월오봉도, 후원 등 궁궐의 형식을 그대로 볼 수 있다. 특히 남한행궁에는 종묘에 해당하는 좌전까지 있어서 임시수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다.

▲ 남한산성 전승문(북문).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행궁을 둘러보니 영화의 장면 장면이 떠오른다. 주화파 최명길과 척화파 김상헌이 각자 자신의 견해를 들어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장면, 서로 다른 입장을 주장하는 두 신하 사이에서 한없이 시름하는 인조, 불안함에 걱정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백성들 모두 병자호란을 나름의 방식대로 앓았을 것이다. 그러다 전투로 날아드는 홍이포의 위력에 간이 떨어질 듯이 놀랐을 것이고, 전쟁이 일어난 그 겨울은 더 추웠을 것이다.

행궁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발굴된 규모도 엄청난 통일신라 건물터와 기와들을 보며 그곳의 역사는 병자호란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더 이전에도 그곳에서는 조상이 살고 있었고, 역사를 꾸며가고 있었으며 우리는 이제야 그것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 남한산성 행궁.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점심 후 북문으로 향하여 성곽길 답사에 나섰다. 300명이 전사한 법화골전투의 현장에는 늦가을 찬란한 낙엽들이 한창이다. 병자호란의 북문에는 참패한 수많은 전사자의 시체가 즐비하였을 것이다. 그런 아픔을 또 다시 겪고 싶지 않아 정조는 문의 이름을 전승문으로 붙였나 보다. 북문에서부터 성곽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가파른 곳에서는 천천히 가며 멀리 보이는 맞은편의 성곽길을 찾아보기도 하였고, 경사가 완만한 곳에서는 산책하듯이 즐기며 가을의 성곽을 제대로 느낄수 있었다. 이번 코스 중 제일 경사가 높은 곳을 심호흡하며 올라가니 암문이 나왔고, 그 문을 통과하니 북쪽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는 연주봉옹성을 만났다. 아마 이곳의 경치를 보기 위해 아이들은 칭얼대면서, 어른들은 침묵속에서 힘든 길을 모두 참았을 것이다. 남한산성의 높은 곳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경치를 내려다보니 전쟁중에는 이 경치를 즐길수 없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니 더욱 그 경치와 바람이 감사했다.

▲ 우리역사바로알기가 11일 시행한 현장학습 참가자들이 남한산성 수어장대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성곽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서문을 만났다. 바로 인조가 청나라 황제에게 항복식을 하러 나갔던 그 문이다. 경사가 가파른 길을 파란 옷을 입고  걸어가며 항복의식을 치르러 가는 왕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당시의 마음이 잊힐 때 즈음에 삼전도비를 찾아봐도 좋을 듯하다. 아픈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명심해야겠다.

 마지막 장소는 청량당과 수어장대이다. 남한산성 내 5개의 장대 중 단 하나 남은 서쪽 장대가 수어장대인데 인조가 직접 군사를 지휘했던 곳이라 한다. 옆의 청량당은 남한산성을 세운 이회 장군과 벽암대사를 기리는 사당이다. 공사 도중 모함으로 억울하게 죽어간 이회 장군의 목에서 날아왔다는 매는 어디로 갔을까? 지금은 이회 장군의 마음이 풀렸을까? 남한산성의 이곳저곳에 깃든 이야기들은 여러 생각을 하게 해준다.

 현장학습을 마무리하고 수어장대에서 다시 행궁으로 내려가는 길은 낙엽이 잔뜩 깔려있다. 밟기도 아까운 알록달록 낙엽들은 병자호란의 아픔을 기억할까? 찬바람 속에서도 아름다운 남한산성에 다시는 나라를 잃어버리는 아픈 기억을 남겨주고 싶지 않았다. 남한산성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에 감사하며 지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