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국가전략, 현재의 지표로 삼을 의미·기능 모색해야


윤명철 동국대교수, 해양문화연구소장

21세기 세계의 질서는 세 영역으로 크게 재편되고 있다.
미국 중심의 세계화와 우여곡절 끝에 구축한 유럽연방(EU), 주변국을 침략해가며 진행 중인 중국 중심의 동양지역화가 그것이다. 이는 또 다른 형태의, 문명을 빙자하여 권력을 무차별적으로 사용해서 만드는 민족주의인 것이다.

이런 세계사의 흐름에 중국은 동북공정을 빌미로 우리역사와 문화를 가로채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동북공정의 주요자료가 우리나라 역사학자가 식민사관을 토대로 연구 발표한 위만조선이니 기자조선, 한사군 등을 내용으로 한 역사연구논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일제시대를 거치는 역사의 흐름에서 민족사학을 인정치 않고 일제시대에 일본의 목적에 맞춰 재해석한 실증사학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제시대라는 국가의 생존위기에서도 역사책을 만들어 민족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교육시킨 민족사학이 있었다. 백암 박은식 선생이나 단재 신채호 선생 등은 만주에서 독립활동을 하면서 직접 현장답사를 거쳐 역사를 기술했다. 역사학자로서 현장답사보다 더 정확한 것은 없기 때문에 민족사학은 압록강이 국경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고구려가 초기부터 강력한 나라라는 것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단군 조선의 건국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삼국시대부터 시작되고 있다. 그러한 우리나라 문명시대는 인류의 문명발달순서와 관계없이 신석기와 구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가 혼합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원시시대에서 돌과 철을 함께 사용한 금석병용기시대로 껑충 건너 뛰어  어느 날 갑자기 찬란한 문명국이 된 것으로 배워 온 것이다. 일제가 자기들 나라보다 유서 깊은 단군조선역사를 잘라버린 탓이다.

일제시대에 일본자료만을 참고로 반도사관에 묶여 연구했던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이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할지라도 해방이후에는 민족사학의 흐름을 부각시켰어야 했다. 정상적인 역사연구도 시간의 흐름에서 발생하는 오류 때문에 점검을 하는데 하물며 일제시대의 식민사학을 고수한 우리역사학계는 아직까지 공식적인 반성과 점검이 전혀 없다.

그로인해 중국지도에 만리장성의 종점이 평양까지 그어졌다. 정상인이라면 누가 그 사실을 믿겠는가? 그러나 그 근거제공자는 바로 우리와 일본이 만든 연구 자료다. 이는 우리 스스로 우리역사를 중국에 바친 꼴이다. 이미 동북공정은 마무리 되어 우리가 대응하기에는 늦었다. 역사는 역사학자만의 몫이 아니다. 역사는 국가와 민족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에 이젠 현실에서 벗어난 학문을 지양하고 용어와 개념, 인식, 그에 따른 실천까지 구국의 차원에서 대응책을 마련하는 정책적인 역사연구가 절실히 필요하다.

동북공정은 고구려 문제가 아니라 신중화제국주의 발현을 위한 중국국가발전전략의 정치논리다. 세계의 흐름에 맞춰 동아시아도 연방형태의 공동체가 필요하다. 문제는 동아시아 공동체가 성립될 경우 한국, 중국, 일본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이 동일한 위치와 동일한 권리를 누리면서 평화롭게 상생할 수 있는가이다.

세계질서의 흐름에서 우리는 남북문제의 실상과 동아시아의 입장, 민족의 입장을 동시에 고려하며 생존해야하는 난관에 처했다. 따라서 21세기 대한민국의 새로운 지도자는 한반도 뿐 아니라 동북아질서 전체를 조망할 줄 알고 그에 따른 대책을 계획할 수 있는 능력자라야 한다. 이러한 우리민족의 미래상은 해륙사관으로 나라를 이끌어간 고구려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고구려의 위상과 역할은 동아시아의 신질서가 수립되는 과정에서도 유효한 모델이 될 수 있다.

우리가 고구려에 대해서 아는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요동평원의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과 연해주지역의 끝없는 삼림초원의 초평선과 발해, 동해·황해·남해를 아우르는 망망대해가 모두 고구려의 영토였다. 사서를 인용하면 고구려는 이미 3세기 전반부터 해양활동이 활발한 해륙민족이었다. 그래서 광개토태왕은 해양활동을 국제 전략으로 채택하여 바다를 장악하고 주변국들 간의 외교망을 통제했다. 때문에 지중해적 국가로서 막강한 군사력과 문화력, 국제정치력을 갖추었고, 그것은 당시의 국제질서에서 새로운 질서를 확보한 것이다.

장수왕도 요동반도, 압록강과 두만강 하구, 범 경기만 등 한반도 중부이북의 영토와 해양을 확보하여 물류거점을 만들고 북방의 산물과 남방의 물품을 중계하였다. 이렇듯 바다길 항만과 당시의 무기를 만드는 철 생산지나 무기에 버금가는 말 생산지 등 광대한 영토를 점령했기에 고구려는 해양과 육상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면서 커다란 원형의 물류 망을 만들었다. 지금의 대련, 여순, 단동, 신의주, 핫산, 나진, 선봉지구, 인천 송도 등이 이러한 물류지역이었다.

광대한 영토와 다양한 자연환경은 필연적으로 사회체제와 국가의 성격을 변화시킨다. 고구려라는 하나의 국가 안에 다양하고 풍요로운 문화가 공존했다. 국가간 문화갈등은 우위선점을 위해 피할 수 없는 충돌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고구려는 강자의 문화를 강요하지 않고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여 세계화를 지향하는 새로운 문화로 향상시키며 공존의 질서를 지켰다.

고구려를 21세기 동아시아 질서재편의 모델로 삼는 중요한 이유는 물류거점(HUB)과 문화거점으로 중계역할(IC)을 한 강한 힘과 다양한 문화가 아니라 상생의 정치력으로 주변국들의 갈등을 무마시키면서 균형을 이루는 조정자 역할과 동아시아의 평화를 구축한 나라로,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모든 나라가 더불어 사는 제국주의였다는 점이다.

1300여 년 전에 사라진 고구려가 현재의 동북아시아 평화에 바람직한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 고구려를 바로 이해하고 고구려의 국가발전전략을 현재에 적용할 의미와 기능을 모색해야한다. 고구려 정신과 그들의 세계관, 국제질서에 대한 대응태도 등을 지표로 삼아 21세기 대한민국의 국가전략발전지표를 설정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실패를 냉정하게 검토하고 세밀하게 분석하여 남북통일의 방법과 바람직한 세계화를 성공시켜야 하고 정치, 경제, 문화, 역사 등 각 분야 학자들의 공동연구로 한국고대사를 정립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