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번화한 빌딩 숲 사이에 자리한 제로웨이스트숍이 있다. 지하철 9호선 신논현역 교보문고 강남점에서 한 블록 아래 대로변 안쪽 건물 2층에 덕분애愛 제로웨이스트샵, 1층에 비건 런치 카페 비푸스를 경영하는 이는 이윤경 대표다.

중견 화학회사 CEO로 덕분애 제로웨이스트샵을 운영하는 이윤경 대표가 시민들이 서로 안 쓰는 물건을 가져다놓고 무료로 가져갈 수 있게 마련된 나눔공간을 소개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중견 화학회사 CEO로 덕분애 제로웨이스트샵을 운영하는 이윤경 대표가 시민들이 서로 안 쓰는 물건을 가져다놓고 무료로 가져갈 수 있게 마련된 나눔공간을 소개했다. 사진 강나리 기자.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이윤경 대표는 올해 27년째 중견 화학회사를 경영하는 CEO이다. 그는 “외국으로 업무상 출장을 다니면서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실감합니다. 비행기가 난기류로 흔들리는 터뷸런스도 예전보다 더 많아졌고, 세계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을 만나면 첫 대화가 ‘요즘 날씨가 이상해졌어’가 되었어요”라고 했다.

화학회사 대표가 환경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전공 때문에 환경호르몬, 미세플라스틱의 문제를 남들보다 빨리 알게 되었죠. 대학 시절 체르노빌 원전사고에 대해 조사하고 스터디하면서 위기를 절감하고 방법을 찾아보기도 했고요. 화학이 환경의 대척점에 있다고 하겠지만 결국 대체할 수 있는 소재 개발 등 화학이 환경 문제 해결에 한 축을 담당해야 하죠. 화학제품으로 인한 환경 오염의 발생도 사실이니까 어떤 책임감도 있었죠.

제로웨이스트샵을 직접 운영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친환경 소비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어 실천하려는데 제집과 회사가 있는 서초구에 제로웨이스트샵이 한 곳도 없더군요. 코로나로 인해 플라스틱 쓰레기가 넘쳐나는 걸 보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주변에 없으면 내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서울 강남 한복판인 신논현역에 있는 덕분애 제로웨이스트샵. 사진 강나리 기자.
서울 강남 한복판인 신논현역에 있는 덕분애 제로웨이스트샵. 사진 강나리 기자.

처음 시작하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제 고민을 듣고 공감해주는 친구들과 3명이 시작했어요.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라 세상을 더 좋은 환경으로 만드는 데 관심이 많았죠. 단순히 친환경 제품 판매에 그치지 않고 왜 필요한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더 많은 사람이 동참하도록 알려 나가는 데 중점을 두었어요.

친환경적인 삶의 방식과 소비에 관해 공부해가며 운영하니까 주변 사람들이 한 사람씩 제로웨이스트라는 단어도 알게 되고, 왜 비건을 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을 나누게 되었죠. 어느새 제 주변에 같은 관심을 둔 사람들이 점점 모이더군요. 지난해에는 고3 학생이 덕분애샵에 방문했다가 “이런 가치관에 동조하고 싶다. 아르바이트를 하게 해달라”고 편지를 썼어요. 올해 대학생인데 지금도 함께 하고 있고, 요즘도 뜻에 동참해 함께 일하고 싶다는 청년들이 DM 연락도 옵니다. 20대 청년들 또래 중에도 환경 문제에 나름의 고민이 있어요.

MZ 세대와 친환경으로 소통하는 통로가 또 하나 있다고.

어모먼트라고 스튜디오가 있어요.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퍼스널 컬러를 진단하고 사진을 찍는 것이 트랜드이죠. 화장품이 화학물질인데 100% 비건으로 할 수는 없지만, 그 공간에서 친환경적인 제품들을 쓰는 것에 관심을 갖도록 하고 있어요. 덕분애 제로웨이스트샵과 비푸스 비건 런치카페, 어모먼트 스튜디오 3팀에서 13명이 함께 일하고 있죠.

주로 어떤 활동들을 해왔는지

친환경 체험 클래스를 진행하고, 본부장이 환경교육을 하면서 요즘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옥상 제로마켓을 열고 있어요. 빌딩 지역이어도 인근에 많은 세대가 사는 아파트 단지도 있는데 주변에 마트가 없어 대부분 대형마트에 가서 포장된 제품들을 사거나 배송으로 구입하죠. 1인 가구도 많은데 무포장 상품을 살 곳이 없더군요. 그래서 옥상에 플리마켓을 열면 지역 주민들이 많이 찾습니다.

지난 4월 22일 지구의 날에는 강남역 인근에서 쓰레기를 주우며 걷는 플로깅 행사도 했죠. 또, VTS(비푸스 띵스 투 제로웨이스트)라고 덕분애와 비푸스의 가치에 동참하는 서포터즈가 있어요. 이들에게 6주 동안 미션을 주고 그 활동을 지원하기도 했죠. 그중 하나가 걷는 거리를 누적해서 후원하는 것이었어요.

비건 지향의 런치 카페 비푸스는 식사와 장보기가 동시에 가능한 그로서리 레스토랑 개념으로 운영 중이다. 평일 점심 직장인들이 주고객이다. 사진 강나리 기자.
비건 지향의 런치 카페 비푸스는 식사와 장보기가 동시에 가능한 그로서리 레스토랑 개념으로 운영 중이다. 평일 점심 직장인들이 주고객이다. 사진 강나리 기자.

비건 런치 카페를 함께 운영하게 된 이유는.

다큐멘터리를 보니 플라스틱도 문제지만 육류 소비가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더군요. 1주일에 한 번 만 채식을 해도 나무를 심는 효과라는 이야기를 듣고 시작하게 되었어요. 이제 1년이 되었는데 크루(직원)들과 메뉴도 의논하고 비건 소스도 자체개발하면서 시행착오도 많았죠.

식사와 장보기가 동시에 가능한 그로서리(grocery) 레스토랑이란 개념인데 소스 리필스테이션도 두고 있어서 제로웨이스트샵에 왔던 고객이 비푸스에서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지 비건 레시피도 배워갈 수 있어요.

비건 식사는 맛이 없다, 가격이 매우 높다는 인식이 있는데

조금 더 가볍고 맛있게 먹을 수 있게 접근하고 있어 손님들이 “비건인 줄 몰랐다”, “비건인데 너무나 맛있다”라고 합니다. 사실 비건 수요가 적다 보니 식재료 가격이 높게 책정되어 있는 게 맞아요. 예를 들어 햄버거 비건 패티도 국내산을 쓰려다 보니 한 곳뿐이라 선택할 수가 없죠. 유통기한도 짧고 대량으로 보관하려면 방부제나 항생제가 들어가야 하니 그럴 수도 없고요.

하지만 일상식이 되려면 가격이 적절하지 않으면 접근하기가 어려워요. 저희 고객들이 주로 점심을 먹는 직장인이라 부담 없이 먹을 정도여야 하죠.

친환경이나 비건에 대해 진입장벽을 낮추는 노력도 필요하다

저희는 문턱을 한 단계 낮춰 비건 지향을 하고 있어요. 완벽한 비건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보면 100명이 조금씩 하는 게 좀 더 이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봅니다. 나비 효과라는 게 있죠. 한 사람보다 여러 사람이 ‘환경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해’라고 하면 더 빠르게 확산될 테니까요.

저는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플라스틱 제품을 10개에서 5개, 3개, 1개, 안 쓰는 것으로 줄여가고 매일매일 고기를 먹던 사람이면 일주일에 하루, 한 달에 하루, 이렇게 자연스럽게 식단이 채식으로 바뀌어 가는 게 좋다고 보죠. 아이를 키우거나 반려동물이 있는 집에서는 육식이 필요한 때도 있어요. 허들이 지나치게 높으면 사람들이 아예 참여할 생각도 못 할 겁니다. 가족도 가볍고 즐겁게 동참할 수 있게 해야 하죠. 제 아이는 “비건 레스토랑 사장이 이러면 돼?”라고 제게 농담하고, 남편은 물병 비닐 포장재를 제거하며 “당신 남편이니까 열심히 뜯는 거다”라고 하기도 하죠. (하하)

이윤경 대표는 친환경 소비나 비건에 대해 가족은 물론 누구나 가볍고 즐겁게 동참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사진 강나리 기자.
이윤경 대표는 친환경 소비나 비건에 대해 가족은 물론 누구나 가볍고 즐겁게 동참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사진 강나리 기자.

제로웨이스트샵이 3년 차인데 꾸준히 경영할 수 있는 비결은?

근래에 소규모 제로웨이스트샵이 많이 생겼다가 폐점하면서 물건을 인수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고 있어 마음이 아픕니다. 저희도 흑자 운영은 아니에요. 저는 여기서 급여를 받지 않고 직원들의 급여만 제대로 주고 있고, 제가 회사를 경영하면서 버는 수익을 이곳에 투자하는 것이죠. 하지만 가치있는 일이라면 하자는 생각입니다.

수익만으로 보면 성공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더 많은 사람이 환경에 관심을 갖게 하고 사회적 약자를 후원할 수 있는 것으로 의미 있다고 봅니다. 환경단체나 산불 난민 등에도 후원하지만, 선진국에서 지구환경을 어질러놓은 것으로 인해 피해받는 제3세계의 사회적 약자를 위한 후원을 하고 있어요.

덕분애를 운영하는 핵심 철학은 무엇인지.

덕분애의 애愛는 사랑이거든요. 기후변화로 인해서 기후난민이 생겼는데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이 사회적 약자들이에요. 우리가 돌봐야 하는데 우리의 작은 실천과 노력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저희 철학이라고 할 수 있죠.

이런 마음을 갖게 된 것은 미국 시인 랄프 왈도 에머슨이 쓴 ‘성공이란 무엇인가?’라는 시 덕분입니다. 내가 이 땅에 살아서 나로 인해 한 사람이라도 더 행복하면 그게 진정한 성공이라는 시입니다. 우리 인생의 성공이 큰돈을 벌고 명예를 얻고 남들보다 더 나아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한 명이라도 더 숨을 쉬고 한 명이라도 더 행복해졌으니까 성공한 게 아닐까 합니다. 성공의 개념을 바꾸면 지구환경과 사회적 약자와도 함께 하는 삶이 가능하죠. 제가 지치지만 않으면 계속 할 수 있을 겁니다.

덕분애 제로웨이스트샵의 다양한 리필스테이션들. 사진 강나리 기자.
덕분애 제로웨이스트샵의 다양한 리필스테이션들. 사진 강나리 기자.

정부나 지자체의 친환경 정책에 대해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함께 대화를 해나가면서 개선해 나가야 할 사항들이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비건 화장품 리필스테이션을 운영하려면 맞춤형 화장품 조제 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규정되어있어요. 그런데 합격률이 낮아서 첫 시험에는 7%밖에 안 되었죠. 실제 여러 원료를 섞어서 제조하는 게 아니라 완제품을 덜어 쓰는 개념인데 제 생각에는 관련 규정이 없다 보니 가장 비슷하면서도 가장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것 같아요. 실제 현장 방문을 해서 실태를 확인한다면 달라질 겁니다. 친환경 소비가 일상의 생활이 되려면 법적 규제도 현실적이 되어야겠죠. 정부와 기업, 소비자가 대화를 해가면서 조금씩 의식을 바꿔 나갈 수 있을 텐데 연대가 필요하기도 하고 우리 이야기를 들을 자리도 만들어졌으면 하죠.

현재 친환경 관련해 추진하는 일이 있다면.

올해 ‘같이하는 가치’로 모토로 정했고, 가치있는 소비, 가치있는 정신을 공유했으면 해서 지역에서 알려나가는 일을 하고 있어요. 플로깅, 체험 클래스, 옥상마켓 등을 하고 있고 서초구청과 함께하는 캠페인에도 참여합니다. 오는 6월 3일, 12일 서초구와 강남구에서 친환경 행사를 개최해서 그곳에서 적극 알릴 계획입니다. 무조건 에코백을 나눠주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그린 캠페인이 되려면 담당자께서 직접 현장에 와서 아이디어를 나눴으면 좋겠다고 제안했고 실제 방문해서 아이디어를 공유했습니다.

친환경 소비에 관심 갖게 된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먼저 내 쓰레기통에 무엇이 가장 많이 버려져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하고 싶어요. 키친 타올이나 휴지가 많이 버려져 있다면 행주를 쓰면 좋겠고, 종이컵을 계속 버리고 있다면 텀블러를 쓰면 좋겠죠. 그런 식으로 자기가 가장 많이 쓰는 것을 줄여가는 것부터 추천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