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꿈을 찾는 1년' 갭이어 과정에서 자신의 꿈을 다진 벤자민인성영재학교 정찬훈 학생. 사진 강나리 기자.
지난 해 '꿈을 찾는 1년' 갭이어 과정에서 자신의 꿈을 다진 벤자민인성영재학교 정찬훈 학생. 사진 강나리 기자.

“모두가 한 방향만 보고 가는 줄에서 잠시 벗어나 세상을 둘러보며 못 보던 걸 보고 경험하면서 저와 정말 친해질 수 있던 한 해였죠. 제 삶을 정말 주도적으로 살아본 느낌입니다.”

17살 정찬훈 학생(벤자민인성영재학교)은 앞서간 누군가의 뒷모습만 보고 따라가는 학창시절이 아니라 국내외에서 수많은 도전과 경험으로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

지난해 찬훈이가 중학교를 마치고 대안 고등학교인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이하 벤자민학교)에서 ‘꿈을 찾는 1년’ 갭이어 과정을 선택하기가 쉽진 않았다. 청소년기에 공교육 밖에서 다양한 경험을 꼭 했으면 한다는 어머니의 권유가 있었다.

“저는 규칙적인 학교생활에 매우 잘 적응하고 만족한 학생이었거든요.(하하) 친구도 많은데 익숙한 환경을 떠나 1년을 보내고, 고등학교로 복학하면 제가 후배가 되는 게 마음의 걸림돌이었죠. 하지만 그보다 새로운 도전과 경험이 앞으로 제 인생에 있어 중요하고 가치가 있을 거라 판단했고, 그 판단이 맞았어요.”

찬훈이가 가장 인상 깊은 체험으로 꼽은 것은 몽골로 떠난 해외 봉사 프로그램 ‘몽구르다’ 참가였다.

(위) 일본, 몽골, 베트남, 라오스 등에서 진행한 청소년 해외봉사 활동 중 '몽골 독수리팀' 성과를 발표하는 정찬훈 군. (아래) 2023 청소년 국제교류 활동 성과 공유회에서 여성가족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오른쪽에서 세번째 정찬훈 학생. 사진 본인 제공.
(위) 일본, 몽골, 베트남, 라오스 등에서 진행한 청소년 해외봉사 활동 중 '몽골 독수리팀' 성과를 발표하는 정찬훈 군. (아래) 2023 청소년 국제교류 활동 성과 공유회에서 여성가족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오른쪽에서 세번째 정찬훈 학생. 사진 본인 제공.

지난해 7월 23일부터 29일까지 한국과 몽골 청소년이 팀을 이뤄 한글 교육과 한국 문화체험, 교육 봉사를 했다. 몽골 3팀 중 대학생들과 5명이 함께 ‘몽골 독수리팀’을 이루었고, 그들의 보고서로 지난해 12월 2일 ‘2023 청소년 국제 교류활동 성과 공유회’에서 여성가족부장관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얻었다.

“몽골은 어릴 적 부모님과 여행을 가서 아버지의 몽골 지인 가족과 보내며 행복한 기억이 가득한 곳이었죠. 이번에 갈 때는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간다고 생각하니 영광이면서도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졌어요.”

통역을 도운 몽골 친구 오랑거와 할리오나는 그에게 ‘빌궁’이라는 몽골어 이름을 만들어 주고 ‘똑똑한’이라는 뜻이라 했다. 울란바토르 외곽에 있는 보양트오하 7번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 중 피구수업을 찬훈이가 이끌었다.

몽골 보양트오하 7번학교 학생들과 피구 수업을 지도하는 정찬훈 군. 사진 본인 제공.
몽골 보양트오하 7번학교 학생들과 피구 수업을 지도하는 정찬훈 군. 사진 본인 제공.

“처음 해보는 피구의 규칙이 복잡하고 듣기 지루할 수도 있을 텐데 엄청나게 집중해서 잘 듣고 호응을 하더군요. 낯선 경기에 조금 헤맸는데 금방 이해하고 즐겁게 피구를 하고는 ‘선생님 최고!’라고 해줬었죠. 선생님으로서 존중해주고 환하게 웃으며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보며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어요. 제 몽골어 이름과 같은 빌궁이란 아이는 더욱 따랐죠. 몽골 아이들과 헤어질 때는 눈물이 났는데 한국에 와서도 한동안 향수병 걸린 것처럼 그리웠어요.”

몽골에서 별이 쏟아질 듯한 밤하늘의 별똥별도 아름다웠지만, 찬훈이는 몽골에서 막연하게 동경했던 자신의 꿈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제가 축구를 무척 좋아해서 중학교 때 족구부, 축구부 활동을 했어요. 감독님이 진로담당 선생님이었는데 잘 가르쳐주시고 아이들에게 진심을 다해 따뜻하게 대하는 모습에 무척 존경했죠.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만 했는데 몽골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가르치는 일이 정말 행복했고 제가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마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거예요.” 사람을 좋아하고 늘 주변에 사람이 모인다는 찬훈이에게 체육 교사의 꿈이 단단해졌다.

몽골 아이들과 수업하고 몽골의 문화를 배우며 친선을 다졌다. 사진 본인 제공.
몽골 아이들과 수업하고 몽골의 문화를 배우며 친선을 다졌다. 사진 본인 제공.

찬훈이는 일본 벤자민학교 학생들과 함께한 한‧일 워크숍 기간 중 마에현 시마시 지역축제인 ‘에-잔카 마쯔리’ 댄스 경연대회에 출전해 일본 전통춤과 벤자민학교 퍼포먼스로 우승했다. 한국 학생 13명과 일본 학생 9명이 두 팀을 이루어 각각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했고 축제 관계자는 “내년에도 꼭 참가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우승상품으로 받은 일본 3대 와규 중 하나인 마츠사카 규(소고기)를 연수원에서 함께 구워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한국과 일본 벤자민인성영재학교 한일 워크숍 기간 중 참가한 마에현 시마시 축제 '에-잔카 마쯔리' 댄스 경연대회에서 우승, 준우승을 차지한 양국 학생들. 사진 본인 제공.
한국과 일본 벤자민인성영재학교 한일 워크숍 기간 중 참가한 마에현 시마시 축제 '에-잔카 마쯔리' 댄스 경연대회에서 우승, 준우승을 차지한 양국 학생들. 사진 본인 제공.

“일본 문화를 접해본 적도 없고, 역사 속 일본은 좋은 나라가 아니었어요. 축구 한일전에서는 무조건 이겨야 하는 나라였죠. 일본 벤자민학교 학생들과 함께 하면서 따뜻하고 밝고 긍정적인 친구들의 모습에 선입견이 깨졌어요. 지금도 일본 친구들이 적어준 롤링페이퍼를 간직하고 있고 서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한 국토 종주, 잠실야구장을 친환경 문화로 바꾸는 경험도 했다.

벤자민학교 전국학습관 학생들이 참가해 12박 13일간 동해에서 통일전망대까지 172km를 걷는 국토대장정에 참가했다. 15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하루 13~14km를 걸으며 많이 힘들고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걸었다.

“길을 걸으며 서로 ‘화이팅’하며 활기를 불어넣었고 텐트를 치고 밥을 하는 모든 과정에서 의견을 잘 조율해나가며 협동심이 굉장히 좋아졌죠. 전국에 많은 형, 누나, 친구들이 생겼어요. 체력도 훨씬 좋아지고 매일 ‘오늘 내가 해냈구나’라고 확인하면서 선택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걸 알고 저 자신을 굳게 믿게 되었고요.”

5월부터 10월까지 약 5개월간 잠실야구장에서 진행한 ‘친환경 문화체인지’ 프로젝트에서는 작은 힘이 모여 만드는 큰 영향력을 경험했다. 벤자민학교 서울학습관과 세종대 환경동아리가 함께 하며 다회용품 사용을 장려하고 반납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경기가 종료되면 쓰레기로 넘쳐나고 분리수거도 제대로 되지 않던 환경이었는데 처음에 무관심하던 사람들도 점차 고생한다고 격려했다.

잠실야구장에서 다회용기 사용을 권하는 '친환경 문화체인지' 프로젝트를 진행한 벤자민인성영재학교 서울학습관 학생들. 왼쪽 첫번째 정찬훈 학생. 사진 본인 제공.
잠실야구장에서 다회용기 사용을 권하는 '친환경 문화체인지' 프로젝트를 진행한 벤자민인성영재학교 서울학습관 학생들. 왼쪽 첫번째 정찬훈 학생. 사진 본인 제공.

찬훈이는 “프로젝트 기간 중 다회용품 총사용량이 25,721개로 늘었는데 소나무를 440그루 심은 것과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올해부터 잠실야구장의 모든 용기를 다회용기로 교체하기로 결정되었죠”라며 “우리의 작은 날갯짓이 엄청난 영향을 미치며 사회를 더 이롭게 바꿔나가는 것을 몸소 경험하면서 제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느끼게 되었어요.”라고 했다.

이외에도 전통무예 단무도 동아리 활동을 하며 척추측만으로 인해 구부정했던 자세를 바르게 만들며 정신은 더 단단해졌다. 서울학습관 친구들과 출전한 ‘2023 전국생활체육대축전 국학기공대회’에서는 청소년부 대상을 받았다. 그리고 풍류도 난타동아리 활동을 하며 음치, 박치에서 탈출해 리듬을 타며 다채롭게 자신을 표현할 줄도 알게 되었다.

“제가 처음 벤자민학교 입학할 때 주변에서는 ‘왜 자퇴를 하느냐?’ ‘큰일난다’고 걱정과 부정적인 말을 많이 했어요. 그러나 지금의 저는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고 당당하게 제 길을 갈 수 있게 단단해진 걸 느낍니다. 지난 1년의 경험과 성장 하나 하나가 모두 소중해서 다 알려주고 싶어요.”

정찬훈 학생은 "벤자민인성영재학교에서 보낸 갭이어 1년을 자신의 청소년기 중 가장 밝게 빛난 한 해였다. 세상을 보는 분을 넓혀주고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도와준 기름과도 같다"고 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정찬훈 학생은 "벤자민인성영재학교에서 보낸 갭이어 1년을 자신의 청소년기 중 가장 밝게 빛난 한 해였다. 세상을 보는 분을 넓혀주고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도와준 기름과도 같다"고 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찬훈 학생은 지난 1년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있고 큰 쉼표였고 터닝포인트였다고 했다. “학기 초반에 24시간 전부가 제게 주어졌을 때 조급해했는데 선생님이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가도 된다’고 조언해주셨어요. 그래서 좀 더 편안하게 저 자신에게 집중하게 되었고 저와 더욱 친해질 수 있었죠. 점차 활동이 많아지면서 급변하는 상황들에 유연하게 대처해나가면서 시간과 공간의 주인이 되는 법도 배웠고요.

벤자민학교는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혀주고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 주어 제가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도와준 기름과도 같아요. 제 청소년기 중 가장 밝게 빛난 한 해였다고 자부할 수 있죠. 많은 경험과 성장은 힘들 때마다 꺼내 볼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될 거예요. 이 경험을 발판 삼아 고등학교 생활도 충실하게 하고 멋지게 성장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