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갑진(甲辰)년은 “청룡의 해”라 불리며 봄과 나무를 담당하는 사방신인 청룡은 우리나라에도 신수이자 수호신으로서 친근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올해 갑진년은 마치 거대한 괴수가 눈앞에서 꿈틀거리는 것처럼 위협적이고 불안하게 느껴진다. 미국 발 금융 사태나 코로나와 같이 여러 악재가 지나갔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전 세계를 크게 뒤흔들었지만 아직은 각 국가가 금융 지원 등 가지고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최악의 위기를 막는 중이라 할 수 있다. 유럽연합은 결속력이 이전처럼 견고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서로 협력하고 있는 상황이며 국제질서가 큰 변동이나 붕괴를 일으킬 만한 사건은 아직 나타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현재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는 평화와 안정이 사소한 사건으로 급격하게 뒤바뀔 가능성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이미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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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이러한 불안 속에 한반도는 점점 더 미·중 갈등의 태풍의 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강국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은 한국을 외교 전략의 큰 축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우리의 의사와는 별개로 군수품 지원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우리는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군수산업의 호황으로 얻는 이점도 분명히 있겠지만 우리는 전 세계의 이권 다툼에 한층 더 깊숙이 관여하게 되었다. 이미 오래 전 우리와 국교단절을 한 대만조차도 중국과 군사 분쟁이 일어나면 미국 때문에 한국이 물자 지원을 넘어 직접 군대를 파견할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세계의 관심이 우리에게 집중되는 현 상황에서 내부의 갈등마저 큰 현재 한국의 정치가 과연 미래를 내다보고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을지, 이러한 위기 속에서 해법을 제시할 뛰어난 인재가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도 등장한 서희와 그가 외교력으로 국가 위기를 모면한 사실은 굳이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국민이 학교에서 배웠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외교를 잘해 강동 6주를 얻었다는 것은 표면적인 내용이다. 강동 6주도 얻었다기보다 만들었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당시 강동 6주는 확실하게 요나라 땅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요 입장에서는 자신들에게 굴복하고 조공 관계를 맺기 위해 거쳐 가야 하는 지역의 골칫거리인 여진을 고려가 직접 정벌하겠다고 하여 그것을 허락했을 뿐인 것이다. 어떤 면에서 서희는 당시 주변 정세를 파악하고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지 예측했으며 자신의 사후에도 고려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죽을 때까지 강동 6주의 요새화 작업을 직접 진두지휘하였던 그의 노력은 고려가 전쟁 이후의 황금기를 누리게 된 가장 필수적인 요인이 되었다. 강동 6주가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었음을 판단한 요나라는 이후 고려를 무력으로 굴복할 뜻을 접었고 고려는 요나라와 송나라 사이의 외교에서 균형추 역할을 하며 엄청난 이득을 얻게 되었다. 실존하는 송나라의 기록에서는 신하 몇몇이 고려에 베푸는 혜택이 너무 크다고 불평하자 바로 파직시켰다고 하고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요나라의 기록에서도 당시 왕인 선종의 생일에 고려 사신이 늦게 도착한 외교적 결례에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듯 여러 상황에서 고려는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고 서희가 구축한 강동 6주는 아시아를 넘어 중동과도 활발하게 무역한 해상강국이자 부국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만들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과거 고려와 흡사한 점이 많다. 국제정세는 매우 불안하며 누가 승자가 될지 가늠하기가 매우 힘들고 한국을 둘러싸고 있는 그 어느 나라와도 완전히 인연을 끊기도, 예전처럼 유지하기도 불가능한 형국이다. 러시아와 중국과의 관계가 과거 한국의 발전과 성장에 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최근 이들의 행동으로 인해 과거의 관계를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혈맹인 미국은 여러 실책으로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리고 있으며 이것이 외교 전략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타 경쟁국과 비교해 여전히 압도적인 1위 국가이며 최근 드러나고 있는 석유와 같은 자원 강국으로서의 힘도 중동이나 타 자원 대국을 능가할 정도로 엄청난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도 겉으로 보이는 잃어버린 30년의 왜소해진 모습과는 다르게 전 세계에 뿌린 소위 “와타나베 부인”이라 불리는 자금이 아직도 세계 3위 경제 대국의 잠재력을 지켜주고 있다.

이와 더불어 현재 북한의 상황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최근 북한이 헌법에 우리나라를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명기했다. 한국을 자신들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다른 국가”로 규정하며 일종의 단절을 선언한 것이다. 이는 결국 북한의 내부 상황이 기존의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인식한 것이며 한류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들어오는 한국의 문화 콘텐츠들이 북한 체제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음을 판단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극단적인 행동이 의미하는 것은 항상 극단적인 상황변화를 암시하며 지금도 불안정한 한반도 정세에 큰 파장을 몰고 올 가능성이 있다.

최근 자주 사용되는 경제용어로 예측 불가능한 재앙인 “검은 백조”와 언젠가는 일어날 재앙이지만 정확히 시기를 알 수 없는 “하얀 코뿔소”가 있다. 하지만 무엇이 검은 백조인지 무엇이 하얀 코뿔소인지를 판단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우며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를 판단하는 것은 이보다 몇 배로 힘든 일이다. 그렇지만 정확한 예측과 대응에 대한 성과는 향후 수십 년간의 황금기를 가져다줄 정도로 큰 이득이 된다. 어수선한 갑진년의 시기를 맞아 고려의 서희가 그러했듯 현 정계에도 무엇보다 국가의 미래를 내다볼 현인이 나타나길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