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온다. 매번 선거철이 될 때마다 각 정당은 마치 총칼 없는 전쟁처럼 서로가 치열하게 상대방을 비방하는 것을 보게 된다. 마치 반대편이 매국노이거나 국가를 전복시킬 어떤 음모를 꾸미는 불한당들인 것처럼 극단적인 분위기로 선거운동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이러한 선거를 매번 겪는데도 어느 쪽이 승리하든 얻게 되는 것은 자기가 지지하는 쪽이 승리했다는 우월감이나 자신이 생각하는 최악의 후보가 뽑히지 않았다는 안도감뿐일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당장 자신이 힘들어하는 문제가 해결됐다는 경험을 한 사람은 극히 드물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미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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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주주의 역사가 상당히 짧은 편에 속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광복 이후부터를 민주주의가 시작된 시기라고 판단해도 아직 79년밖에 되지 않는다. 민주화 운동의 결과로 1987년 6·29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가 온전히 정착된 것을 시작으로 친다면 37년 정도 된 셈이다. 국민을 주체로 삼는다는 정치제도치고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지 국민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내는 시도가 상당히 부족했다. 선거철이 지나면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근본적인 개선점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광복 이후 국가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미국 정치제도의 많은 부분을 참고하거나 모방하였다. 겉으로 볼 때 미국의 상황은 한국보다 나빴으면 나빴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너무도 오랜 기간 그들은 정치적으로 양극화되어 다퉈왔고 건국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포퓰리즘에 의해 자격이 의심되는 선동가들을 대통령으로 뽑은 경우도 많다. 심지어 미국만의 특이한 투표제도로 인해 국민의 다수가 선택하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하지만 그들의 선거제도를 상세히 들여다보면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의 정치는 마을에서부터 시작하는 풀뿌리 정치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시민들은 지역사회 활동 참여율이 상당히 높다. 지역의 중요한 정책이나 안건에 대해서는 타운홀 미팅(Townhall Meeting)을 통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한다. 지역사회의 선거에서는 시민들의 기부활동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 기부가 단순히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돈을 주는 것이 아니다. 기부는 저녁식사나 행사에서 후보를 직접 만나 이야기하는 기회를 사는 형태로 이뤄진다.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에 대해 개인적으로 더 친밀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소위 큰물이라 할 수 있는 주정부나 연방정부와 같은 정치판에도 큰 영향을 준다. 대부분의 정치인이 지역사회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에 유권자들과의 친밀감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최소한 그들과 소통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척이라도 한다. 미국에서 정치인이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사람 이름을 외우는 것이라고 할 정도다. 또한 전통적으로 선거에 당선되는 데에 후보의 활동 경력을 중시하기 때문에 선거광고나 토론회에서 자신이 어떤 법안을 찬성했고 상대방은 어떤 법안을 찬성했는가를 가지고 공방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미국의 풀뿌리 정치는 후보 공천에서도 한국과 큰 차이를 보인다. 지역사회에서 이미 활발히 시민들의 정치활동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당 지도부가 공천권을 행사하는 힘이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밖에 없다. 정치가들이 당 지도부보다 자기 지역의 평가를 더 신경 쓰게 되는 것이다. 최근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정치적 승리로 평가받는 연방기관 자금지원에 대한 합의도 결과적으로 야당인 공화당 온건파들과의 협력으로 이뤄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미국의 선거구조에도 여러 문제가 있다. 팩이라 불리는(PAC) 정치행동 위원회(Political Action Committee), 특히 그중에 2010에 합법화된 슈퍼팩(Super PAC)이 하나의 사례이다. 취지는 주정부나 연방정부는 참여인구가 많아 개개인이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이를 강화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특정 정당에 소속되지 않는 것을 전제로 무제한으로 돈을 써서 특정 후보를 홍보할 수 있는 단체설립을 허가했는데 결과적으로 선거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불어나게 되어 여러 가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했다.

하지만 이러한 선거제도를 통해 미국의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목표는 명확하다.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의지로 주권을 행사하고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양당정치의 맹점을 보완하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에 중요한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